〈3〉칼 잃은 자리 배〈刻舟求劍〉에 새기지 않는가？

1. 화장명 수좌(華藏明首座)에게 주는 글

화두들 때 ‘송화두’ ‘염화두’ 하면

조사들 뜻과는 십만 팔천리나 먼 일

달마스님이 양(梁)나라에 갔다가 위(魏)나라로 가서 낙초자비(落草慈悲)로 사람을 찾으며 소림(少林)에서 9년을 홀로 앉아 있었다. 이때 깊은 눈 속에서 한 사람을 만났는데 마지막에 “무엇을 얻었느냐?”고 묻자 다만 세 번 절하고 제 자리에 가 서니 마침내 “골수를 얻었다”는 말이 있게 되었다.

보리달마 대사는 남천축국 향지왕의 셋째 아들로 초조 가섭존자로부터 인도의 28조인데, 6세기 초에 중국으로 건너와 중국 선종(禪宗)의 초조(初祖)가 되었다. 처음 뱃길로 들어와 양나라 무제를 만났는데, 양무제가 알아보지 못하여 인연이 맺어지지 않았다. 이에 양자강을 건너 숭산 소림사에 머물며, 법을 전해줄 사람을 9년간 기다렸다.

지금의 숭산 소림사에서 가파른 산길 따라 반시간쯤 올라가면, 소실봉(少室峰) 아래 달마 대사가 지내던 굴이 있다. 어느 날 낙양에 살던 40여 세의 활달한 스님인 신광(神光, 487~593)이 찾아와 밤새 내린 눈 위에서 믿음의 징표로 한쪽 팔을 단비하면서 법을 구하였다.

“제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원하옵건대 스승께서는 저의 마음을 편안케 하여주십시오.”

그러자 달마 대사가 말했다.

“그대의 불편한 마음을 나에게 가져오너라. 그러면 편안하게 해주리라.”

신광이 한참 있다가, “아무리 찾아보아도 마음을 찾을 길이 없습니다”고 하였다.

이에 대사가 “내가 너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고 말하자 신광은 그 말끝에 활연대오 하였다. 이에 달마 대사로부터 혜가(慧可)라는 법호를 받고, 선종의 2조가 되었다.

어느 날 달마는 제자들을 불러놓고 차례차례 공부한 바를 물었다. 그때 혜가의 차례가 오자, 말없이 절을 하고 제 자리로 돌아가 합장하고 섰다. 이에 대사는 “너는 나의 골수를 얻었다”고 말하면서, “옛날에 여래께서 정법안장을 가섭 존자에게 전했는데, 차례차례 부촉하여 나에게까지 이르렀다. 이제 너에게 부촉하니, 잘 수호하여 지켜야 한다”고 당부하며 법을 전했다.

그로부터 그루터기를 지켜 토끼를 기다리는(守株待兎) 무리들이 앞을 다투어 ‘말없이 절하고 제자리에 선 것’을, 골수를 얻은 심오한 이치라고 여기게 되었으나 그들은 칼 잃은 자리를 뱃전에 새겨놓고 나중에 칼을 찾는 격(刻舟求劍)이 되었음을 전혀 몰랐다 하리라. 이런 자들이야말로 칼 잃은 자리를 배에다 새기는 자들이니 꿈엔들 달마 스님을 뵐 수 있겠는가.

‘수주대토’는 한비자(韓非子)의 <오두편(五篇)>에서 유래된 고사성어다. 중국 송나라의 한 농부가 나무 그루터기에 달려와 부딪쳐 죽은 토끼를 우연히 잡은 후에, 또 그와 같이 토끼를 잡을 것을 기대하여 일도 하지 않고 나무 그루터기만 지키고 있었다는 일화다. 원오 선사는 이런 말을 통해, 낙처(落處)를 모르고 그 외형만 흉내 내는 모습을 경책하고 있다.

또한 ‘각주구검’은 <여씨춘추>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어느 초나라 사람이 배로 강을 건너다가, 칼을 그만 물속에 빠뜨렸다. 그는 급히 배에다 표시를 해두며, 거기가 자신의 칼이 떨어진 곳이라고 말했다. 이윽고 배가 강기슭에 닿자, 그는 자신이 표시해둔 배 언저리에서 물로 뛰어 들어가 칼을 찾았다. 칼이 물속으로 떨어진 곳을 움직이는 뱃전에 표시해두고 나중에 찾으려 했으니, 크게 어리석다는 뜻이다.

원오스님이 멀리 있는 화장명 수좌에게 이런 편지글을 써 보내는 뜻도, 모름지기 수좌라면 달마 대사와 혜가스님 사이의 일화에서 그 외적인 명상(名相)에 속지 말고 두 분 사이에 이심전심으로 주고받은 속뜻에 계합하여 ‘수주대토’나 ‘각주구검’의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이다.

화두를 들 때도 송(頌)화두나 염(念)화두를 하고 있는 것은 이미 지나간 엉뚱한 곳에서 잃어버린 칼을 찾는 것과 같다. 이것은 조사들의 뜻과는 십만 팔천리나 먼 사구(死句)를 참구하는 것이다. 잃어버린 칼을 찾으려면 놓치자마자 그 자리에서 곧 물로 뛰어들어 찾아야 하는 바, 화두 상에서 즉각 의심이 일어나야 비로소 활구(活句) 참구에 조금이나마 상응한다고 할 것이다.

수불스님 | 금정총림 범어사 주지
[불교신문 2014년 3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