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정신적 벽, 더 막히게 함이 ‘역설적 자비’

수불스님의 원오심요 선해〈2〉 1. 화장명 수좌(華藏明首座)에게 주는 글

‘근본’ 하나에 철저해야 공부인

인연만나 몰록 의단 터져나가야

곧바로 보여주는 조사선에 어찌 샛길을 용납하리오. 여기서는 향상인(向上人)만을 귀하게 여길 뿐이다. 그들은 듣자마자 곧 들어 보이고, 뽑아들자마자 당장 가니, 설사 밝은 눈으로 엿본다 해도 벌써 바보짓이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한 모서리를 들어 주었는데도 나머지 세 모서리를 돌이켜 알지 못하는 사람은, 내 상대하지 않겠다” 라고 하였으니, 하나를 들면 나머지 셋을 알고 눈대중으로 아주 작은 차이를 알아내어 수레바퀴가 데굴데굴 굴러가듯 전혀 막힘이 없어야 ‘향상의 수단을 쓴다(提持)’고 할 수 있으리라. (이하 원문은 <선림고경총서>30, ‘원오심요’에서 인용. 인용을 허락해준 장경각출판사에 감사드린다.)

이 편지는 원오 선사가 강녕부 천녕사에 머물던 시절에 쓴 글이다. 화장명 수좌는 원오 선사가 금관 협산 종부 등에서 지내실 때, 그 밑에서 계속 10년을 따라다니며 공부하였다. 인연에 따라 잠시 떠나게 되자, 선사께 청하여 편지를 통해 가르침을 받으며 정진하였다.

‘향상인’이란 본래면목을 밝히는 근본문제 하나에 철저한 공부인을 말한다. 그런 사람은 깊은 신심으로 공부하고 있으므로, 당처를 곧바로 보여주는 조사선의 종지에 부합하여 작은 기미에도 즉각 향상일로(向上一路)에 계합한다. 한 모서리를 들어주면 나머지 세 모서리를 알아듣고 소화시킬 줄 알아야, 향상인의 자격이 있다.

듣지 못하였는가. 양수(良遂)스님이 마곡(麻谷)스님을 찾아뵈었을 때, 뵙자마자 마곡스님은 방장실로 들어가 문을 닫아버렸다. 그가 의심을 품고 있다가 두 번째 다시 찾아뵙자 이번에는 마곡스님이 채소밭으로 휙 가버렸다. 그러자 양수스님은 단박에 깨닫고 마곡스님에게 말하였다.

“스님! 저를 속이지 마십시오. 스님을 찾아와 뵙지 않았더라면, 일생을 12부경론(十二部經論)에 속아서 지낼 뻔 하였습니다.”

이처럼 했던 것을 보건대, 그는 참으로 힘을 덜었다고(省力) 하겠다. 양수스님은 되돌아와서 대중들에게 말하기를, “여러분이 아는 것을 나는 모조리 알지만, 내가 아는 것은 여러분이 모르리라” 하였다. 양수스님이 안다고 한 것은 바람 한 점 통하지 않는 경계로서, 다른 사람들은 결코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겠으니 진짜 사자라 할 만하다. 그 집안의 종지를 잇는 법손이 되려면 반드시 그의 경지를 벗어나야만 할 것이다.

마조스님의 법을 이은 마곡보철 선사를 양수스님이 찾아뵈었을 때, 선사는 짐짓 두 번이나 모른 채 해버렸다. 샛길을 용납하지 않고 곧바로 보여주는 조사선 도리를 드러낸 것이다. 다행히 양수스님이 사교입선(捨敎入禪)의 길을 찾고 있던 입장이었기에, 첫 번째에서 깊은 의심에 걸려들었다. 부처님의 경을 읽고 이해하는 데는 막힘없이 다 통했지만, 막상 근본문제에 있어서는 그만 아찔하고 캄캄하여 깊은 고민에 빠져있었던 것이다.

양수스님은 이 문제를 풀기 위해 답을 알고 있는 마곡 선사를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멀리서 골똘한 얼굴로 오고 있는 양수스님을 보자마자, 자비스러운 선사는 설상가상(雪上加霜)의 장치를 시설해주었다. 정신적인 벽에 가로막혀 답답해하고 있는 사람에게 더 막히게 해주는 것이 선의 역설적인 자비다. 첫 번째 만남에서 평소의 의심이 더욱 깊어져 철벽에 막혀있던 양수스님은 다행히 두 번째 만남에서 놓치지 않고 즉각 그 뜻에 계합해 들어갈 수 있었다. 마치 물통의 밑창이 터지듯, 단박에 품고 있던 의단이 터져나간 것이다. 이것이 한 모서리를 드러내면 나머지 세 모서리를 알고 법의 수레를 막힘없이 굴리게 되는 조사가풍이다.

비록 12부경론을 앞뒤로 막힘없이 다 외워도, 지해(知解)로는 실상(實相)을 밝히지 못한다. 무생법인(無生法忍)의 실상을 밝히지 못하면, 생사를 대적할 수가 없다. 근본을 깊이 의심하고 있다가, 시절인연을 만나 몰록 의단이 터져나가야 비로소 생사일대사를 해마쳤다고 할 수 있다.

수불스님 | 금정총림 범어사 주지
[불교신문 2014년 3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