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에서 평화로…달라지는 위령대재

6월 호국보훈의 달

아군뿐 아니라 적군도 천도하는 법회 ‘눈길’

국가주의 벗고 동체대비 정신 강조 ‘새모습’

현충일(6월6일)과 한국전쟁 기념일(6월25일)이 속한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나라의 안녕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들의 공덕을 기리자는 취지다. 불교계에서도 희생을 실천한 이들의 극락왕생을 위해 매년 다채로운 추모법회를 준비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한국전쟁 정전 60주년이어서 의미가 더욱 크다. 망자에 대한 애도와 함께 동체대비 정신의 실천을 강조하는 점이 예년과는 달라진 모습이다. 호국불교 정신의 계승을 넘어 남북갈등을 극복하고 화해의 씨앗을 심겠다는 발원이 눈에 띈다.


종단의 군포교를 책임지고 있는 조계종 군종특별교구(교구장 자광스님)는 매년 6월 호국영령 천도법회를 열어 전사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있다. 금년에도 역시 ‘제14회 호국영령 천도법회’를 오는 8일 오전 10시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중앙광장에서 봉행한다. 조계종 포교원장 지원스님을 비롯해 군종교구장 자광스님, 한국전쟁 정전60주년 한반도평화대회 운영위원회 상임위원장 수불스님(부산 범어사 주지) 등 종단 중진 스님과, 한국전쟁 참전 용사 및 유가족, 각국 주한대사와 김관진 국방부장관 등 사부대중 3000여 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예년보다 2배 이상의 규모다.

무엇보다 ‘한국전쟁 정전 60주년 한반도 평화기원’이라는 부제가 붙은 점이 특징이다. 군종교구장 자광스님은 “금년 호국영령천도법회는 특히 종단이 주최하는 한반도평화대회의 일환으로 봉행돼 감회가 더욱 남다르다”며 “지금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평화와 화합이 나라를 지키다 희생된 호국영령들의 정신을 헛되이 하지 않는 것이란 메시지를 강조할 것”이라고 밝혔다. 오는 9월말 열리는 자비구현 인류화합 한반도평화대법회는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한 인류 공동의 노력을 호소하자는 취지다. 예비대회의 성격인 이번 호국영령 천도법회 또한 호국과 함께 화해의 메시지가 부각될 전망이다. 한시적이고 불안한 정전(停戰) 체제를 영구적인 평화가 보장되는 종전(終戰) 체제로 전환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도 해석된다.

행사를 마친 후엔 모든 내빈들에게 한국전쟁 당시 군인들이 먹던 주먹밥을 똑같이 만들어 제공하기로 해 이채롭다. 막연한 기념이 아니라 과거 세대와의 소통을 위한 작은 배려다.

육군 제5군단 역시 한국전쟁 기념일인 오는 25일 오전 10시30분 ‘6.25 호국영령 위령대재’를 봉행한다. 군단장을 비롯해 예하부대장 전원이 참석하는 부대 주요행사이며 올해로 30회를 맞는다. 가장 오래된 위령재이자, 가장 불교적인 천도의식 가운데 하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참전했던 국군과 우방국 전사자뿐만 아니라, 적군의 영령까지 천도한다는 점에서 괄목할 만하다.

5군단 법당 호국금강사는 국군을 포함해 남한을 지원하기 위해 한국전쟁에 참전한 16개국의 전사자, 무엇보다 북한군과 소련군, 중공군 등 적군의 위패를 함께 모셨다. 고(故) 정동호 전 군단장의 발원이 열매를 맺었다.

5군단이 위치한 포천지역은 6.25 당시 미륵고개 전투 등 수많은 사상자를 냈던 격전지였다. 특히 관음산 약사동 용화동 등 불교적 지명이 많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독실한 불자였던 정 전 군단장은 1984년 군단장으로 부임하자마자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고 무주고혼을 위로하자”는 취지에서 위령대재를 기획해 그해 11월28일 첫 번째 위령재를 열었다. 당시 조계종 총무원장 녹원스님이 참석할 만큼 종단 차원에서 성대하게 치러졌다. 5군단 법당인 호국금강사도 그의 지휘하에 건립됐다. 이어 현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밀운스님이 스리랑카에서 부처님 진신사리를 이운해와 호국금강사 3층 석탑에 봉안하며 의미를 더했다.

정 씨의 작고 후에는 군포교에 솔선수범해온 현성스님(서울 도선사 조실)이 봉행위원장을 맡아 위령재를 주도하고 있다. “미혹한 중생을 위해 피아(彼我)를 구분하지 않고 넋을 위로하는 것은 부처님 제자로서 가져야 할 당연한 자비심”이란 게 현성스님의 설명이다.

2011년부터 고양 길상사가 봉행하고 있는 ‘전몰장병 및 학도병 위령대재’도 고무적이다. 길상사가 위치한 고봉산 일대는 6.25당시 서부전선의 격전지로, 수많은 희생자들의 한이 서린 곳이다. 어린 나이에 국가의 부름을 받고 전쟁터에 나가 산화한 학도병들의 영가와 국군전몰장병, 북한군과 중공군의 원혼까지 동시에 천도하며 생명평화의 가치를 선양하고 있다. 길상사 주지 보산스님은 “전사자들은 아군과 적군을 막론하고 국가권력간의 갈등과 이념대립의 희생양일 수 있다”며 “이들에 대한 천도는 전쟁종식과 평화를 향한 서원이 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해마다 6월 호국보훈의 달이 오면 불교계 바깥에서도 다양한 추모행사가 열린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의 투혼을 기리면서, 국민들에게 애국심과 안보의식을 독려한다는 목적이다. 일체중생에 대한 자비를 지향하는 불교의 위령재조차 애국과 안보에만 치우친다면, 불교 본연의 진정성이 희석될 수 있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이념’보다 ‘생명’에 무게중심을 둬야 한다는 제언이다. 그런 점에서 위에 소개한 천도법회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응철 중앙승가대 포교사회학과 교수는 “불교의 근본사상은 나와 남이 다르지 않다는 불이(不二)이므로 국가주의와 우적(友敵) 관념을 부추기는 법회는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며 “화해와 평화를 되새기는 천도의식의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장영섭 기자 | fuel@ibulgyo.com
[불교신문 2013년 6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