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들 ‘여시아문’만 줄줄 외고 ‘불교창고’에 갇힌 죄수나 다름없어”

보살계 삼화상 예방받은

범어사 내원암 능가스님

“승가 안정.화합” 강조

젊은 스님들에 일침도

“고산시님, 건강은 좋지?” “괜찮아요.” 세수로 올해 구순이 넘는 능가스님이 팔순의 고산스님에게 건강을 물었다. 한국불교 중흥조 동산스님의 제자로 불문에 들어 60여년의 세월을 함께 걸어온 두 스님은 절친한 도반처럼 만나자마자 양손을 맞잡았다. 범어사 보살계 수계산림이 열렸던 지난 4월24일. 범어사 주지 수불스님은 보살계 삼화상으로 모신 고산스님, 정관.무비스님과 함께 범어사 산내암자 내원암에 주석하고 있는 능가스님을 찾아갔다.

전날 내린 봄비로 청명해진 하늘과 봄꽃이 만개한 이날, 수불스님은 내원암을 오르며 흐뭇한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 노시님 오랜만에 찾아뵙는데, 노시님께서 참 좋아하실거구먼. 큰스님들 모시고 찾아뵈면 깜짝 놀라시며 더 좋아하실게야.”

능가스님이 거처하는 곳은 서너평 남짓한 조그만 방이 세 개로 나뉘어져 있었다. 침실과 운동기기가 놓인 방, 다실 겸 서재. 책장에는 뇌과학 관련 서적과 각종 역사책이 꽂혀 있었고 서재 벽면엔 스님의 진영과 박근혜 대통령의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능가스님은 “구순이 넘으니까 당최 들리지는 않지만, 매일 책 한권씩은 읽는다”고 했고, 박 대통령을 가리키면서 “재임시 분명히 남북통일의 사명을 이룰 인물”이라고도 했다. 청력은 약해도 능가스님의 목소리는 방안이 울릴 정도로 우렁찼고, 안색 또한 맑고 깨끗했다.

능가스님은 무엇보다 ‘범어사의 안정과 화합’을 상당히 강조했다. “범어사가 살아야 종단이 살고, 종단이 살아야 세계정신계가 사는 게야. 한국불교는 ‘범어사불교’야. 내가 40년 전에 한국종교협의회, 한일종교협의회, 아시아종교협의회를 만들었지만 이제는 역사적 과정으로 봤을 때 ‘세계종교협의회’가 필요한 시대야. 범어사를 중심으로 세계종교협의회를 어떡해든 만들어서 너희들에게 남겨주고 갈까 생각하고 있어…우리 수불이는 나이는 어려도 아주 믿을만 해.”

능가스님은 고산스님에게 범어사를 ‘부탁’하기도 했다. “고산스님, 쌍계사는 다 차곡차곡 안정이 되지 않았어? 범어사는 아직 불안정해. 주로 범어사에 계시면서 당분간 범어사를 잘 다독여 줬으면 좋겠습니다.” 고산스님은 “건강하게 오래 살아요. 그러면 모든 일이 이뤄질거예요”라고 짧게 답했다.

능가스님은 이번 범어사 보살계 전계화상으로 참석한 고산스님에게 “내가 스님 범어사로 어쨌든 오게 하려고 내 마음속에서 얼마나 고민한 줄 알어? 아이고…”라고 하면서 “30년 숙제가 풀렸네. 고마워”라고 말했다. 이는 지난 1970년대 고산스님이 범어사 강원 강주로 있다가 타의에 의해 범어사를 나오게 됐던 일에 관해, 능가스님이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고산스님은 1948년부터 범어사 별좌와 도감, 원주소임을 맡아왔고 1968년부터 강원 일을 해왔지만 당시 여러가지 상황 속에서 스님의 뜻과 무관하게 범어사를 떠나야 했고, 그 때의 섭섭했던 마음이 지금도 조금은 남아있는 듯 했다. 하지만 팔순과 구순의 두 스님은 이날 아이처럼 맑고 천진한 웃음을 보이면서 차를 마시고 함께 사진도 찍었다.

능가스님은 이날 1950년대 한국불교조계종 개혁안을 만들었다 좌절됐던 경험을 들려줬고 화합과 결속이 결여된 요즘 산중총회의 문제점 등에 대한 질타도 잊지 않았다. “요즘 스님들 돌연으로 절에 들어와 ‘여시아문’만 읽은 사람이 뭘 알겠나. 불교를 제대로 깨우치려면 역사적 배경과 사회적 상황을 바로볼줄 아는 식견이 있어야 하는데…. 이 시대 중은 불교라는 창고에 갇힌 죄수라고 말하고 싶네. 중이 조계종의 송장이야. 바깥에서 안을 들여다봐야지, 안에서 바깥을 보면 뻔한 것 아닌가. 사관(史觀)이 정립돼야 올바른 견해를 갖는 법. 화엄경 법화경 만날 읽어봤자 세상 볼 줄 몰라.”

범어사 내원암=하정은 기자 | tomato77@ibulgyo.com
[불교신문 2013년 5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