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이 ‘열반한 도깨비’ 돼서는 안된다”

범어사 ‘한반도평화기원 보살계 수계산림’서 고산스님 법문

“보살계를 받았다고 으스대고 법사의 법문을 가볍게 듣고, 실천과 행동보다 말이 앞서는 보살은 ‘열반한 도깨비’와 같다. 몸을 바르게 갖고 청정하게 계를 지키면서 살아라. 청정한 계는 가장 안온한 공덕이 머무는 곳임을 알아라.

지난 23일 부산 범어사 대웅전. 총림승격을 맞이하면서 처음 열리는 한반도평화기원 보살계수계산림에서 오랜만에 법상에 오른 전계대화상 고산스님은 보살계 법문을 통해 이같이 말했다. 고산스님은 이 날 오후2시부터 4시반까지 2시간반에 걸쳐 48경계를 하나하나 설명한 뒤, 계를 수지하게 될 불자들을 향해 ‘열반한 도깨비’를 빗대 아집과 아상을 경계하라고 강조했다.

봄비가 하염없이 내리는 궂은 날씨 속에서도 5000여명의 불자들은 법문을 경청하면서 진지한 자세로 수계에 임했다. 고산스님은 마흔여덟가지 계율을 설명하면서도 ‘술을 마시지 말라’와 ‘고기를 먹지 말라’와 같은 덕목을 예로 들면서, “세속에서 사업을 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이런 덕목까지 꼭 지키라고 하면, 그것 무서워 아예 계를 받지 않으려는 거사님들이 많더라”며 “술은 요령껏 취하지 않도록 마시고, 고기 역시 시장에서 파는 죽은 생선을 먹거나 약간의 육식을 하는 것은 허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장사 중에도 결국엔 사람죽기를 바라는 장사는 삼가야 하며, 세력을 믿고 약한 이를 협박하지 말고, 사람 해치는 물건을 집안에 두지 말며, 부모를 죽인 원수라도 원수갚을 생각을 하지 말라는 등 계율을 현대에 걸맞게 적절하게 해석해줘 사람들의 박수와 호응을 받았다.

고산스님은 “이처럼 계를 잘 지니면 향기가 시방에 풍기고 명성이 멀리 퍼지며 하늘과 사람이 사랑하고 공경하며 소원을 모두 얻는다”면서 “계는 온갖 법이 머무는 자리”라고 강조했다.

한국전쟁 정전 60주년을 맞아 오는 9월 부산 일대에서 봉행하게 될 한반도평화대회의 원만개최를 위해 한반도평화을 기원하며 열린 이번 범어사 보살계 수계산림은 전계대화상 고산대율사를 비롯 갈마아사리에 정관대율사, 교수아사리에 무비대율사 등이 삼화상으로 계를 설했다. 유나아사리는 수진스님, 인례사 오산스님과 영명스님, 집탁에는 금륜스님과 설총스님이 각각 의식을 봉행했다.

이 날 저녁 7시반부터 1시간 동안 설법전에서는 범어사 주지 수불스님의 특별법문시간도 이어졌다. 비가 오는 가운데 날이 저물자 기온이 내려가 한겨울 추위를 방불케 했지만 법문을 듣는 불자들의 열기는 뜨거웠다.

수불스님은 “마음에 그릇된 산란스러움이 없으면 그것이 선정이자 곧 자성의 계”라며 “계율을 수지함으로써 자기성찰의 기회를 가지는 인연으로 거듭나고 그러면서 올바른 가르침에 눈뜨는 지혜를 만나야 한다”고 설했다. 수불스님은 또 “모든 것을 걸러낼 수 있는 계를 바탕으로 속거나 속이지 않는 힘을 길러야 한다”며 “자신의 온몸 전신이 눈(目)이어야 생활 속에서 분별하지 않고 자기 갈 길을 원만하게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설법전을 가득 메운 1000여명의 불자들은 큰 박수를 보내면서 스님의 법문을 가슴깊이 새겼다.

범어사 보살계 수계산림은 다음날인 24일 참선정진과 보살계법문 천수다라니 노사나불 정근 등에 이어 오후3시까지 수계식을 가질 예정이다.

범어사=하정은 기자
[불교신문 2013년 4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