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5개월’ 14교구본사 범어사 주지 수불 스님

“존경받는 승가의 향훈이 세상을 바꾸는 원동력”

주지는 역할 찾아 맡기고
대중의 도움 청하는 자리

도량이 화합·안정 찾으면
지역과 소통은 자연 회복

지난 5개월 여, 조계종 14교구 본사 범어사 소식이 연일 눈에 띤다. 부산시장이 부처님오신날 범어사에서 봉행된 봉축 법요식에 참석한다는 소식을 시작으로 동국대 경주캠퍼스에 선센터 건립기금 2억원 기부, 부산 동명대에 불교문화학과 장학금 1억원 기탁 뉴스가 이어졌다. 오는 10월27일엔 소외계층 지원을 위한 ‘생명존중 행복 나눔 콘서트’도 열린다고 한다. 거기에 흥미로운 소식이 하나 더 들렸다. 안국선원 불자들이 범어사 불사를 위해 10억원을 모연, 오는 10월10일 전달식을 갖는다. 액수도 적지 않지만 본사 불사를 위해 말사 신도들이 나서는 경우도 드물다. 이 모든 뉴스의 중심에 범어사와 주지 수불 스님이 있다. 지난 5월7일 범어사 주지에 취임한 수불 스님은 당선 직후 “범어사가 부산지역 불교를 선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간화선 대중화와 선풍진작”을 범어사의 우선 과제로 손꼽았다. 취임 5개월, 범어사에는 어떤 변화가 있는 것일까.

“범어사가 바뀐다는 것도 맞는 말이겠지만, 범어사는 그냥 범어사일 뿐입니다. 저 때문에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변하고 있다면 그저 시절인연이 도래한 것뿐입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대중이 서로 화합하고 원만하게 어우러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주지입니다. 모든 대중이 자신의 몫을 할 수 있도록 각자에게 적절한 역할을 맡기는 것이 주지의 소임입니다. 대중에게 도움을 청한다는 것이 좀 더 정확한 표현이겠죠.”

변화는 불러오는 것이 아니라 찾아오는 것인가. 아니면 그저 겸손의 표시인가. 지난 5개월 범어사가 보여준 행보는 분명 우연은 아니다. “범어사가 부산지역 불교를 선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약속도 여전히 생생하다.

“참회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참회하고 고쳐야 할 부분이 있다면 고쳐야합니다. 그렇게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하지만 주지가 이렇게 해야 한다,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요구하는 것은 부적절합니다. 더구나 범어사는 1400년의 역사를 지닌 선찰대본산입니다. 면면히 이어져 온 수행의 정신이 도량 안에 깃들어 있습니다. 비록 사람의 오고가는 인연에 따라 보이는 모습이 흐려질 수는 있지만 범어사 도량, 그 정신의 본체가 어지러워진 적은 없었습니다. 대중이 화합하고 안정된다면 그 본 모습이 바르게 드러날 것입니다. 그 속에서 도량 안과 도량 밖의 소통도 저절로 회복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범어사와 대중들이 선찰대본산과 수행자라는 원래의 자리를 회복한다면 지역사회와의 소통은 자연히 이뤄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여기에 노력이 더해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수불 스님은 취임 후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다. 기본적인 종무행정 외에도 부산지역 신행단체들과의 만남, 각종 지역 행사 참석, 초청 법회 등등이 하루도 빠짐없이 이어지고 있다. 피곤한 기색이 있을 법도 한데 찾아보기 힘들다.

“사람들을 만나고 찾아다니는 일은 힘들지 않습니다. 그런 줄 알고 맡은 자리니 힘들다고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익이 돌아갈 수 있다면 기꺼이 해야 할 일입니다.”

수불 스님은 내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것”을 거듭 언급한다. 잇따르는 보시, 기부도 그런 측면일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돈이 많은가?” “많다”는 대답이 바로 돌아왔다. 물론 신도들이 공적인 일에 쓰라고 가져다주는 돈이 많다는 뜻이다. 선원불사, 군포교, 교육사업 등 불교계 곳곳에 지금까지 보시한 규모가 어림잡아도 200억원이 넘는다. 직접 할 수도 있는 일. 하지만 모든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역할이 있다. 그 역할을 존중하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동참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때로는 직접 나서는 것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그것 또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200억이라는 보시규모도 많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끝도 한도 없이 보시를 받고, 끝도 한도 없이 보시를 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익이 돌아간다면 결코 충분하다는 만족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 곳에나 보시를 해서도 안 된다. 그 역시 많은 사람들에게 이익이 돌아갈 수 있어야 하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일이어야 한다. 나름의 원칙이다. 또 물질적 보시보다 더 중요한 것이 ‘정신적 보시’라고 강조한다.

“수행자는 정신적인 나눔을 이끌어야 합니다. 불교는 나라가 흔들리고 망해도 흔들리지 않고 국민을 보듬어야할 조직입니다. 그 가르침을 이어가고 전하는 것이 출가자들의 소임입니다. 출가자가 물질적인 것을 제공한들 얼마나 할 수 있겠습니까. 그 대신 사람들의 정신을 채워줄 수 있어야 하고 그 속에서 존경과 믿음을 얻어야 합니다.”
수불 스님은 ‘깨달음을 통한 성찰’을 강조한다. 빠르게 변화하고 발전하는 사회에서 조화와 균형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깨어있는 정신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행을 통한 자기성찰이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과 그 가르침을 나누는 것, 수행의 길로 이끌어가는 것이야말로 수행자의 가장 큰 보시라는 지적이다. 주지의 역할도 그 속에서 찾고 있다.

“사찰은 세간의 사람들이 찾아와 위안을 얻고 스스로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돼야 합니다. 특히 승가는 그들에게 모범이 되고 존경받을 만한 집단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라면 금정산의 산문을 폐쇄하고라도 수행해야 할 것입니다. 대중 모두가 하나로 마음을 모아 선찰대본산이라는 범어사의 본모습을 드러낸다면 금정산의 물길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이끄는 발원지가 될 것입니다.”

이웃 사람에게 이익 된다면
누구든 만나고 손 내밀 것

승가 존경·믿음 회복 위해
산문 닫고 수행할 각오해야

취임식에서 약속한 “금정산 물길 따라 범어사의 정신은 끝없이 후손들에게 면면히 흘러갈 것”이라는 인사말이 다시 떠올랐다. 하지만 걸림돌도 있다. ‘불도부산’의 명성 옆에는 항상 ‘기복불교’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수불 스님은 그런 지적에 동의하지 않는다.

“부산은 다양성과 무궁무진한 힘을 갖고 있는 도시입니다. 물론 기복적인 입장이 강하기도 하지만 그것을 부산불교의 특징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선찰대본산 범어사가 부산에서 1400여년의 역사를 이어왔고 재가불자의 간화선 수행이 전국에서 가장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도량 가운데 하나인 안국선원도 부산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다만 그런 수행의 힘을 좀 더 보편화시키는 노력이 부족했던 것 만은 사실입니다. 그 변화를 일으켜야 하는 것이 범어사의 역할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신행을 수행으로만 몰아가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기도와 수행, 교와 선이 골고루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안국선원을 통해 수많은 재가불자들에게 수행의 길을 제시한 수불 스님의 노하우가 범어사의 수행풍토 진작에 활용될 것이라는 기대가 큰 것 또한 사실이다.

“특별한 비법은 없습니다. 다만 경전과 조사어록 중심의 법문을 통해 끝없이 수행의 가치를 제시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랄까요. 그것이 저의 권선법입니다. 전각을 지어 사찰의 외관을 바꾸는 것도 불사지만 수행을 통해 불교의 내일을 바꾸는 것도 불사니 권선을 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지만 수행자로서 사람들을 수행의 길로 이끄는 노력은 미래세가 다 되도록 그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최근 그 권선의 룰이 깨졌다. 범어사 주지 소임을 맡기 전 안국선원을 이끌면서 단 한 번도 화주첩을 돌린 적이 없었다. 그런데 최근 범어사 불사를 위해 안국선원에서 화주첩이 돌았다. 수불 스님도 묵인했다.

“누가 얼마를 보시했는지가 중요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지라는 자리를 맡은 이상 그것 역시 양명하게 처리해야하는 것이 주지의 소임입니다. 중요하다, 중요하지 않다의 기준이 내가 아니라 대중이 돼야 합니다. 대중 모두가 이해할 수 있고 수긍할 수 있도록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화주첩도 필요했습니다.”

범어사 주지 수불 스님은 결코 선도하는 리더십의 소유자는 아니다. 그 보다는 느리고 더디지만 “대중과 호흡을 함께 하며 더불어 한 걸음 움직이는 것”을 강조했다. 모든 원동력은 대중 속에서 나오고 그 대중이 바로 범어사의 역사이자 1400년 이어져온 힘이라는 확신 때문이다.

“불교가 자성과 쇄신이라는 구호를 스스로 외쳐야 될 만큼 혼탁해지고 나약해졌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지만 치유와 회복의 방법 또한 불교 안에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수행이고 그것이 범어사의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뼈와 살을 깎아서라도 수행을 통해 거듭나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세상이 승가를 향해 ‘수행자의 모습은 저래야 한다’고 찬탄하고 믿음과 존경을 보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범어사는 동산 스님의 정화정신을 통해 근대 한국불교의 근간을 이룬 도량입니다. 그 정신이 희석되고 흐트러졌다면 그것을 다시 밝히고 담아내는 것 또한 범어사의 소명이고 과제입니다. 범어사의 대중과 함께 승가의 본 모습을 회복한다면 그 기운이 한국불교 전체로 확산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지금 범어사의 작은 움직임은 그 큰 변화를 위해 대중이 함께 내딛는 첫 걸음일 뿐입니다.”

아직 갈길이 멀다. 불교계 내부에서 빚어지는 잇따른 악재와 사건들에서 비롯된 자성과 쇄신 요구 목소리는 여전히 승가를 향하고 있다. 믿음은 아직 회복되지도 않았고 존경도 견고하지 못하다. 하지만 “수행을 통해 남과 나 모두를 이롭게 하는 것이 수행자의 본래 몫”이라는 수불 스님은 “범어사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익을 주는 도량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것이 범어사의 본래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변화는 본래 자리로의 회귀일 뿐이다. 이제 대중이 함께 그 첫 걸음을 시작했으니 지켜볼 일이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법보신문 1164호 2012년 10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