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옷 벗듯 심신이 한결 가벼워졌어요”

⑩ 동국대 국제선센터 ‘간화선 집중수행’ 현장

■ 오전8시30분

수행으로 하루를 시작

동국대 서울캠퍼스 학술문화관 3층 한 켠에 자리를 잡고 있는 국제선센터(선원장 수불스님). 간화선 집중수행에 동참한 수련생들은 이른 아침 선센터를 찾아 간편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대각전에서 자신과의 싸움에 들어갔다.

기둥에 붙여 있는 ‘절대묵언’이 유난히 크게 눈에 들어오는 법당 안은 무거운 적막으로 가득했다. 재가불자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곳곳에 스님들의 모습도 눈에 띈다. 출재가의 출입이 구분된 일반 사찰과 달리 이곳은 스님과 불자와의 구별이 없다. 각자 자신에 근기에 맞춰 치열한 구도행을 이어가는 모습이 여느 선방과 다르지 않아 보였다.

국제선센터가 지난 8일 입재를 시작으로 15일까지 8일간 진행한 간화선 집중수행에는 사부대중 130여 명이 방부를 들였다. 당초 100명으로 정원을 제한했지만, 참석자들이 몰려 부득이 30명을 추가로 받았다. 지난 1월, 7월에 이어 올해 세 번째 마련된 집중수행 프로그램이 벌써부터 입소문을 타면서 선센터에는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김영수 동국대 국제선센터 과장은 “간화선에 대한 스님과 불자들의 관심이 기대 이상으로 높은 것 같다”면서 “당초 이달에는 프로그램 운영계획이 없었는데, 대중의 요청으로 없던 일정을 만들었고 그 마저도 참석자가 몰려 정원을 늘리게 됐다”고 말했다.

회향 하루를 앞둔 이날 대각전에는 100명이 넘는 대중이 동참해 정진을 이어갔다. 여름방학을 맞아 동참한 여고생에서부터 대학생, 주부, 직장인, 70대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연령과 계층도 다양하다. 특히 간화선을 직접 체험하기 위해 동국대와 중앙승가대 학인 스님 20여 명이 동참해 재가불자들과 함께 정진했다.

프로그램 회차가 늘어날수록 스님들의 참여가 증가하고 있다. 간화선 집중수행은 템플스테이를 겸한 여름 수련회와는 차별성을 두고 출퇴근이 가능하며 수행에만 집중할 수 있는 큰 특징이다. 더불어 간화선 대중화에 앞장서 온 수불스님의 지도를 직접 받을 수 있어 대중으로부터 호응을 얻고 있다.

7월에 이어 두 번째로 프로그램에 동참했다는 수련생 김나영 양(서울 풍문여고 1학년)은 “부모님의 권유로 참석했는데 처음에는 답답했는데, 이제는 오래 앉아 있어도 힘들지 않다”면서 “정신도 맑아져 집중도 잘 되는 만큼 앞으로 공부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 오전9시

화두법문으로 납자들을 일깨워

8일 동안 이어지는 간화선 집중수행은 대각전에서 오전9시 선원장 수불스님의 화두법문으로 공식일정을 시작한다. 수련생들은 대각전에서 각자 참선으로 정진을 이어가다가 이 순간만큼은 모두 좌정해 수불스님의 법문에 귀를 기울인다.

이날 역시 100여 명이 참석해 스님의 법문을 경청했다. “앉은 자리에서 겁먹지 말고 죽기 살기로 끝까지 밀어붙여야 한다”로 말문을 연 수불스님은 수련생들에게 치열한 구도행을 강조했다. 이어 “맹렬하게 화두를 들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스님에 따르면 화두를 드는 데는 타협이 없다.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하듯 스스로 화두에 들었다고 인정할 때 까지 자신을 다그치며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것. 이것이 바로 수불스님이 말하는 공부하는 사람의 자세다. 수련생들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스님의 가르침에 공감을 했다.

하지만 알면서도 쉽게 행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수행이다. 때문에 수불스님은 대중에게 한 가지 방법을 제안했다. “제일 어리석은 것이 생각이다. 일시적으로 생각을 내려놓고 몸으로 공부해라. 이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주저하지 않는 용맹심이 필요하다. 그리고 해 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추면 안 된다. 이런 각오가 됐다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多羅三?三菩提)는 그냥 얻어 지는 것이 아니다.”

이와 더불어 수불스님은 법문에 이어 ‘즉문즉설’을 통해 수련생들에게 “백척간두에서 진일보할 수 있도록 정진을 게을리 하지 말라”고 거듭 강조했다.

■ 오전10시

눈 밝은 스승이 제자들을 점검

1시간에 걸친 화두법문이 끝나자 수불스님은 “공부가 어느 정도 됐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나를 따라오라”고 말했다. 스님에게 일주일의 정진에 대한 점검을 받는 시간이다. 이날 법회에 참석한 수련생 10여 명이 스님과 함께 선원장실로 향했다.

“그 동안 어떤 경험을 했고, 스스로 무엇이 달라졌다고 생각합니까?” 스님의 질문에 각자 느꼈던 소회를 털어놓았다. 대각전에서 정진할 때 보다 더욱 긴장된 모습이다.

간화선은 눈 밝은 선지식이 믿음을 낸 사람으로 하여금 화두참구를 통해 ‘참의심’을 불러일으켜 깨닫는 수행법이다. 모든 사람이 불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인연만 닿는다면 누구에게나 깨달음의 길이 열릴 수 있다.

하지만, 스승에 의한 점검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때문에 수불스님은 간화선 집중수행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오전 오후로 나눠 수련생들을 대상으로 점검의 시간을 가졌다. 이를 통해 수련생들은 자신이 무엇이 부족하고 앞으로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하는지 해답을 찾는다.

수불스님에게 점검을 받았다는 동국대 강사 일중스님은 “그 동안 외국에서 공부하며 위빠사나 수행은 자주 접했지만, 간화선을 집중해서 체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이를 통해 갑옷을 벗어놓은 듯 무거웠던 몸과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고, 이번 경험이 앞으로 수행과 포교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오후4시

나와의 싸움, 정진 또 정진

수련생들은 이날 오전 수불스님의 화두법문과 점검, 점심공양을 마치고 오후에도 정진을 이어갔다. 대각전 안은 오전과 다름없이 적막함이 감돌았다. 두 눈을 감고 좌복 위에 가부좌를 튼 수련생들의 구도열 또한 변함이 없다.

법문과 점검시간을 제외하고 나머지 시간은 스스로 정한 자신과의 약속에 의해 정진을 이어갔다. 때문에 국제선센터에서는 “최대한 수행에 집중하고 싶다”는 참가자들을 배려해 학교 협조를 얻어 동국대 기숙사를 한시적으로 개방했다.

또 법당을 24시간 개방해 프로그램의 효율성을 극대화 했다. 현재 수련생 40여 명이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이와는 별도로 매일 법당에서 철야 정진하는 수련생만 20여 명에 달한다.

의정부에서 왔다는 수련생 김상백 씨(기업 임원)는 “부모님을 모시고 절에 다녔지만 간화선 수행은 처음으로 접했다”면서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지친 삶에 큰 활력소가 된 만큼 다음에는 가족들과 함께 오고 싶다”고 말했다.

홍성에서 상담심리치료사로 일하고 있다는 수련생 김용해 씨는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안정을 찾았고 불자로서 좋은 경험을 한 것 같다”면서 “앞으로 맡고 있는 상담 업무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만족스러워했다.

국제선센터는 간화선 집중수행과 더불어 오는 9월17일부터 10월12일까지 불교를 공부한 동국대 외국인 교수를 강사로 초청해 불교 영어교리 강좌를 운영할 계획이다. 국제선센터로서의 실참은 물론 불교교육에도 소홀함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매주 토요일 오후2시 외국인 스님을 법사로 초청한 가운데 영어법회를 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수불스님은 “앞으로도 수행 전통을 바로 이어 국제선센터가 세계적인 참선수행 도량이 될 수 있도록 더욱 힘쓰겠다”고 밝혔다.

허정철 기자 | hjc@ibulgyo.com
[불교신문 2842호 2012년 8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