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화선, 세계를 비추다’ 동국대 국제학술대회 현장

…“선사와 학자의 소통”

동국대 불교학술원은 지난 12~13일 동국대 중강당서 1000여명의 청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간화선 세계를 비추다’를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했다.


“간화선은 구하는 세계 아닌 덜어내는 돈오<頓悟> 의 길”


진제 - 고우 - 혜국 - 수불스님…

禪師들의 활발발한 ‘사자후’

학자들이 바라 본 ‘禪 공안’

“亞 간화선 실상 비교-조망”

‘간화선, 세계를 비추다’를 표제로 내건 동국대 국제학술대회는 국내외 불교학자들의 논문 발표와 선사들의 법문을 통해 간화선의 이론과 수행법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학자들은 지적 관점에서 최상승(最上乘) 수행법의 면면을 설명했다면, 선사들은 ‘활발발한’ 사자후로 선의 실체를 보여줬다. 말 그대로 자아를 일깨우는 간화선으로 ‘세상을 비추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는 담론의 장이었다.

◆ 간화선에 대한 학문적 조명

간화선의 핵심은 화두(話頭)다. 화두에 대한 의심이 시작이요 화두를 타파하는 게 끝이다. 로버트 샤프 미국 버클리대 교수는 ‘선 공안, 어떻게 사고할 것인가’란 주제의 논문에서 중국 당나라 시대의 공안(公案), 즉 검증된 화두의 철학적 의미를 물었다. 그는 “깨달음은 극적으로 번뜩이는 통찰력 속에서 오는 것이고 이러한 통찰력은 공안과의 싸움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개에게는 불성(佛性)이 없다’ ‘뜰 앞의 잣나무’ 등 조주종심 선사의 유명한 공안을 예를 들며 비논리적인 발언이 품고 있는 궁극적 지향점을 구체화했다. 공안의 본질은 언어적 개념과 판단이 아니라 “불교수행에서 당장 중요성을 가지는 존재론적 주제(인과 깨달음 진리 죽음)를 다루는 데 필요한 변증법적 기술”이란 것이다.

샤프 교수는 “조사, 부처, 깨달음과 같은 용어가 쓰일 수 있는 확고하고 최종적인 지시대상은 결국 존재하지 않는다”며 “수행자는 이러한 사실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내면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언어적 지시대상인 자유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깨달음에 진정한 자유가 놓여 있다는 결론이다.

동국대 교수 종호스님 역시 화두의 의미를 고찰했다. 샤프 교수의 지적과 같이 ‘공안을 타고 공안을 넘어서는 것, 말을 타고 말을 넘어야 하는 길’이 간화선임을 명시했다. 무엇보다 ‘목표의 직접 지향성’, ‘화두 자체가 이미 진법(眞法)의 세계’, ‘함축성’ 등 세 가지 특징에 간화선만의 매력과 장점이 있다고 역설했다. 여타의 수행법처럼 단계나 과정을 설정하지 않고 ‘간명직절하게’ 깨달을 수 있고, 화두에는 법계 만유의 일체가 함축되고 연결돼 있어 하나의 화두만 타파하면 완전한 깨달음을 이룰 수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할보 아이프링 노르웨이 오슬대학 교수는 망상을 없애는 명상 수행법으로서 간화선에 접근했다.

그는 “망상이 일어나는 순간 화두로 꽉 눌러 버리고 일상생활 중에 화두를 절대 놓지 않는 것”이며 “모든 생각을 화두에만 관심을 두고 망상이 차지할 공간을 없애는 것이 간화선”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미국 햄프셔대 교수 혜민스님은 간화선에 대한 현대 한국 선사들의 다양한 가르침을 소개했다. 숭산스님부터 전 조계종 종정 성철스님, 인천 용화사 법보선원장 송담스님, 안국선원장 수불스님까지. 한국의 선풍을 드날린 선사들의 공부법을 열거하며 화두에 대한 의심, 곧 ‘의정’이 수행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중앙승가대 교수 미산스님은 초기불교와 간화선의 수행체계를 비교분석했다. 간화선의 3가지 필수요건(대신심 대의심 대분심)과 초기불교 37조도품의 5근 5력을 견주며 유기적인 관계를 파악했다. 한암사 용성선원장 월암스님은 한국불교 전통선원의 현황과 수행가풍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고, 제임스 롭슨 하버드대 교수는 한국 선불교의 주류인 임제종과 묵조선 계통의 조동종이 서로 대화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이밖에 나타샤 헬러 교수(미국 UCLA대), 혜원스님(동국대 교수), 이덕진 교수(창원전문대), 김방룡 교수(충남대), 윌리엄 보디포드 교수(UCLA대), 코지마 타이잔 스님(일본 향악사), 월암스님(한산사 용성선원장), 시지루 스님(미국 포마나대 교수), 로버트 지멜로 교수(미국 노틀담대) 등도 주제발표를 통해 각자의 간화선에 대한 생각을 드러냈다.

화두일념만 지속되면 깨닫는 과정은 찰나 영원한 행복 참다운 평화 구하는 마음 없을 때 와 모든 생각 화두에만 쏟아 망상 없애는 작업이 간화선 간화선 제대로 깨달으면 마침내 무아의 진리 체득

◆ 선사들의 살아있는 사자후

학술대회의 시작은 충주 석종사 금봉선원장 혜국스님이 열었다. 혜국스님은 “간화선은 구하는 세계가 아니고 덜어내는 길, 돈오(頓悟)의 길”이라고 일갈했다. 아울러 “영원한 행복, 참다운 평화는 채워서 얻을 수 있는 세계가 아니며 덜어내고 덜어내서 구하는 마음이 없어질 때 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님은 파도의 비유를 들며 간화선 수행에 필요한 정견(正見)을 가르쳤다. “바닷물이 마음이라면 파도는 망상번뇌다. 파도는 실체가 없다. 바람만 잠재우면 파도는 그대로 바닷물이다. 그러니 파도를 없애려 싸우지 말라. 그릇을 비우면 그릇엔 허공이 가득하다. 내가 만든 허공이 아니라 원래 있던 허공이다. 부처도 닦아서 새로 만드는 세계가 아니다. 생각의 길이 끊어지고 말길이 끊어진 자리가 화두이고, 돈오란 더 이상 덜어낼 게 없는 상태다.”

조계종 원로의원 고우스님은 1부 회향법문에서 “간화선을 깨달으면 무아(無我)의 진리를 체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본래 내가 없음을 알면 △남과의 비교에서 비롯되는 스트레스를 떨칠 수 있고 △자기가 하는 일의 가치와 의미를 알게 되며 △자주적이면서도 소통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스님은 “외형적인 모양은 다르나 본질은 모두 하나”라며 “화두 참구가 본질을 체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역설했다. 안국선원장 수불스님은 2부 입재법문에서 간화선 수행의 핵심과 대중화 방안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 “간화선 수행열기를 가지고 있는 우리 조계종단의 수행체제가 보다 완벽하게 구비될 때, 한국불교 세계화의 실현 가능성도 한층 높아질 것”이라며 “전 세계인에게 간화선 수행을 통한 정신적 이익을 나누어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동화사 조실 진제스님의 법문이 학술대회의 대미를 장식했다. 스승인 향곡스님과의 법거량을 소개하며 역대 조사들처럼 상당(上堂) 법어를 펼쳤다. 진제스님은 “화두일념만 지속되면 그 깨닫는 과정은 찰나인 것이니, 모든 분들이 세상사에 정신없이 세월을 낭비하지 말고 일거수일투족 화두와 씨름해서 대오견성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한국 간화선 위상 한층 높이는 계기”

장영섭 기자 fuel@ibulgyo.com
[불교신문 2648호 2010년 8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