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는 삶의 목적 찾는 원형”

안국선원장 수불 스님

부처님, 쉽고 빠른 깨달음 제시
‘虛像’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행
무명 걷을‘눈’갖는 것이 신심

6월 8일 오전 6시 30분. 이른 아침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청담동에 소재한 한 호텔 로비는 인파로 북적거렸다. 아침 댓바람부터 호텔로비를 가득 매운 인파들은 다름 아닌 동국대 불교대학원(원장 계환)이 주최한 ‘불교 CEO 조찬법회’에 참가한 불자들. 이들은 간화선 대중화를 이끌고 있는 안국선원 선원장 수불스님 강연을 듣기 위해 자리를 함께 했다. 이날 조찬 법회는 5월 11일 무비스님(동국대 역경원장)에 이은 두 번째 강연. 동문 간 유대감을 높이고 불교·모교발전을 위한 논의를 위해 마련된 법회는 불교경영자 최고위(CEO)과정 동문과 재학생을 대상으로 매월 두 번째 화요일 청담동 프리마 호텔에서 열리고 있다. ‘종교를 믿는 이유와 목적’을 주제로 열린 수불스님의 법문을 지상중계 한다. 〈편집자주〉

종교를 믿는 이유와 목적을 알기 위해서는 우선 종교의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인류 사(史)에 있어 종교 출현이 아주 오래 됐을 것이라 여기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마도 제일 먼저 인류사에 종교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약 4천년 전 발생한 힌두교입니다. 불교는 2천 6백년 전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전파하면서 일어났고, 기독교는 이보다 늦은 2천년 전 일어났습니다. 인류는 주술이 아닌 이론과 창시자가 확실한 정상 종교가 자리를 잡으면서 획기적인 발전을 이뤘습니다.

태양숭배 등 토속신앙들도 나름 종교적 근거가 있었죠. 하지만 이들은 신화적, 제사장적 근거가 강했고, 자율이 아닌 강권의 의한 믿음이라 한계가 있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무명과 어둠을 타파하고 지혜로 거듭날 수 있는 많은 근거를 중생들에게 제시했습니다. 이러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가장 쉽고 빨리 깨달을 수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빠른 정보, 경제적 여유, 자유로운 종교생활 보장 등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깨달을 수 있는 여건이 보장된 시대를 살면서도 우리는 지금보다 과거가 불법을 깨닫기 좋았다는 ‘과거 회귀형’생각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6년간 고행을 하신 후 1주일 만에 깨달음을 얻은 것을 생각해보면 무명타파의 길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다섯 비구들이 부처님의 깨달음을 쉽게 얻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부처님께서 깨달음에 이르는 공식을 완성해 누구나 쉽고 빠르게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쉽고 빨리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근거를 부처님께서 제시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근거가 없다며 우왕좌왕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조계종의 대표적 선 수행인 간화선도 대중들에게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해 수행자들의 전유물로 전락한 것도 마찬가지고요.

우리는 내가 아닌 종교자체를 위한 믿음으로 종교생활을 하고 있지 않는가 점검해야 합니다. 종교자체에 기댄 사람은 광신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삶의 근거를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도반과 함께 수행 정진해야 됩니다.

사람들은 종교가 어렵다고 합니다. 하지만 종교만큼 쉬운 것이 없습니다. 종교가 어렵다는 일반적 개념은 종교윤리와 일반윤리를 혼돈했기 때문입니다. 선과 악을 예로 들어볼까요? 만약 일반윤리가 종교윤리처럼 선과 악이 모두 진리라고 한다면 상식의 틀이 깨지고 사회 공동체가 무너질 겁니다. 사회유지를 위해서는 선과 악에 대한 정확한 규정이 필요한 거죠. 하지만 정신적(종교적)구조는 이와 다릅니다. 흔히 쓰는 청정(淸淨)이란 말은 일반적으로 깨끗함을 상징합니다. 하지만 종교에 있어 청정은 물들지 않은 것을 지칭합니다.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은 것이죠. 청정이란 단어의 뜻이 다른 것처럼 양쪽 의미를 취합해 둘을 하나로 볼 수 있는 큰 눈을 떠야 더 큰 눈으로 세상을 관조할 수 있는 준비와 여유가 생길 것입니다.

우리는 사물을 눈이 보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물을 눈이 보는 것이 아니라 눈을 통해 보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명확한 근거와 개념이 정립되지 않아 편견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습니다. 어디서부터 허물이 생겼는지에 대한 원인을 모르는 것이죠.‘눈이 보는 것이 아니고, 귀가 듣는 것이 아니다’라는 본질적 깨달음을 수행으로 승화시키면 부처님의 깨달음을 이해하면서 그 안에서 또 다른 즐거움과 여유를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불교를 믿는다고 하면 누구나 수행을 권합니다. 하지만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수행이라 할 수 없죠. 비록 부처님께서 누구나 다 함께 수행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드셨지만 공부 인연과 믿음이 없으면 깨달음에 눈을 뜰 수 없습니다. 시절인연과 기회가 되어야 하지만 이치를 논하는 이론과 함께 깨달음을 느낄 수 있는 수행을 맛봐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권선은 불사보다 부처님에게 가까이 접근 한다“는 말처럼 법당에 기둥을 보시하고 부처님을 모시고 하는 것 보다 눈을 뜨게 할 수 있는 진정한 불사를 스스로 깨닫고 남에게 권하는 신심이 중요합니다.
우리는“저 사람 신심이 돈독하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바르게 눈을 떠 원력이 일어나야 진정한 신심을 가진 것입니다. 신심은 절에 많이 가고, 경전을 공부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무명을 타파할 수 있는 눈을 떠야 제대로 된 신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한국사회는 다종교, 다문화 시대에 들어갔습니다. 이러한 사회를 이끌어가는 리더의 태도와 사상이 중요합니다. 지도자가 물질만능주의가 아닌 모든 구성원이 인정할 수 있는 정신적 깊이가 있는 생각과 근거를 구성원들에게 제시해야 구성원들이 좀 더 편안하고 여유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겁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 불교의 저력은 수천 년 역사를 통해 입증됐습니다. 종교를 믿는 이유와 목적이 무엇일까요? 이른 아침부터 법문을 듣기 위해 분주히 움직인 여러분은 아마도 답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수불 스님은?
1975년 범어사에서 지명스님을 은사로 출가, 지유스님으로부터 사미계를, 고암스님으로부터 비구계를 받았다. 1978년 범어사 승가대학(대교과) 졸업 한 후 1979년부터 1989년까지 제방선원에서 수행정진했다. 1989년 안국선원을 개원, 간화선 대중화와 보급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재단법인 조계종 안국선원 선원장 겸 이사장을 맡고 있다.

정리= 김치중 기자
[주간불교신문 2010년 6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