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초대석 차 한잔] 임성원 독자여론팀장이 만난 수불 안국선원 선원장

"늘 깨어있어야죠, 한시라도 생명 소중함 잊어선 안됩니다"

28일은 정월 대보름이다. 정월의 초하루에서 대보름까지는 새해를 맞이하는 기간이다. 세시풍속의 절반이 이 시기에 몰려 있을 만큼 우리 민족에게 특별한 기간이 바로 정월 초하루에서 대보름까지인 것이다. 대보름을 앞두고 안국선원 선원장 수불스님을 부산 금정구 남산동 안국선원에서 만났다.

지성인들이 갈등 잘 조율
화합과 상생의 대전제
이끌어내야

사람들이 바른 눈 뜨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종교 역할

언론 인터뷰를 사양하기로 소문난 수불스님은 처음부터 손사래를 쳤다. 비록 음력 새해를 맞이하지만 희망을 잃고 살아가는 대중을 위해 보름달 같이 원융한 세상살이 지혜를 묻겠다고 하자 다른 스님과 신도 여럿을 불러 놓고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기간송정학두홍(幾看松亭鶴頭紅, 소나무 위 머리 붉은 학을 몇 번이나 보았는가)이라는 말이 있지요. 학의 머리는 시간을 뜻합니다. 새해는 새로운 출발을 의미한다지만 불가에서는 시간은 없다고 봅니다. 매일 아침 뜨는 해를 보지만 그 해가 달력이 바뀌었다 하여 새롭게 볼 것은 아니지요. 찰나 찰나 숨 쉬는 한 시간을 소중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니 늘 깨어 있어야지요. 한시라도 생명의 소중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깨어 있는 매 순간 순간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지요. 지금 잘 사는 것이 미래에도 잘 사는 방법입니다."

정월 대보름을 앞두고 음력 새해를 맞이할 보름달 같은 희망의 메시지를 달라는 첫 물음에 스님은 "늘 깨어 있으라"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 혹은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 같은 답변을 내놓았다. 상(相)에 얽매이지 않고 찰나 찰나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뜻일까. 세상을 둘러보면 젊은이들은 취업난에 시달리고 있고, '80대 20 사회'가 고착화되어 빈부격차가 심화되는 한편 진보와 보수의 이념 충돌까지 겹쳐 사회적 갈등이 양산되고 있다.

"우리 사회가 굉장히 불규칙하게,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다고들 착각하는데 정신적인 기반이나 물질적인 모습에서 현저하게 안정감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남들은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변화를 읽어내지 못해서 그렇지 아주 자연스럽게 안정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잘 살고 못 사는 것을 비교하고, 좌와 우를 나누고, 옳다 그르다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다 보면 지혜에 눈 뜨지 못하는 것이죠. 지성인들이 자꾸 싸움 부칠 생각하지 말고 화합과 상생이라는 대전제를 이끌어내야 합니다. 희망적인 미래를 앞장서 설계해줘야지요. 갈등을 잘 조율하는, 보다 넓은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합니다."

부산은 불자가 많기로 이름난 불교도시다. 전국의 사찰을 부산 불자들이 모두 먹여 살린다는 소문(?)도 나돌고, 절집 패션인 회색 몸뻬가 거리를 활보하는 유일한 도시라는 지적도 있을 정도다. 부산이 다른 도시보다 유독 불교세가 강한 이유는 무엇일까.

"선지식이나 큰스님들이 과거에 많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을 지키려는, 배타적이지 않으면서도 전통을 중시하는 뿌리 깊은 가치관을 갖고 있지요. 먹을 것 준다고, 꾄다고 해서 잘 넘어가지 않습니다. 부산의 불교세가 강한 것은 부산 사람들이 이런 깊은 신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지요."

수불스님이 선원장으로 있는 안국선원은 산사의 간화선을 시중으로 가져와 '도심 속 재가수행 1번지'라는 평가를 받는다. 대중의 반응도 폭발적이어서 1989년 부산에 안국선원이 생긴 이래로 서울과 창원에도 분원을 두고 있다. 미국 뉴욕과 뉴질랜드 오클랜드에도 안국선원과 연계된 절집이 있다. 부산 안국선원의 경우 매일 절집을 찾는 불자들이 700~800명에 이르고, 법회 때는 1천500명 가까이 몰려든다. 간화선의 대중화와 재가수행이 왜 중요한지를 스님께 물었다.

"간화선은 스님들만 하는 게 아닙니다. 승가나 재가 구분 없이 누구나 다 불성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진리에 눈 뜰 기회도 균등하게 주어져야 합니다. 누구에게만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것은 부처님의 뜻이 아니죠. 누구나 수행하면 지혜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절이 도심에 있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고려 때만 하더라도 절집이 시중에 있었어요. 조선시대에 들어와 숭유억불 정책 때문에 시중의 절이 산속으로 간 겁니다. 잠깐 동안일 뿐 절은 언제나 대중과 함께한 것이지요. 불교는 이제 생활불교가 되어야 합니다. 현실 속에서 수행도 함께해야지요. 많은 스님들이 그렇게 해왔고, 저도 보다 적극적으로 재가수행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을 뿐입니다. "

간화선은 스님들도 하기 힘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 선사들이 남긴 1천700 공안을 중심으로 화두를 드는 간화선은 일반에게는 낯선 것이 사실이다. 화두는 어떻게 들어야 하고 풀어야 할까.

"간화선은 가능하면 쉽고 빨리 될수록 좋습니다. 화두는 근본적인 것을 깨뜨리는 의심이지 의심하기 위한 의심이 아니죠. 참다운 실상을 자각하기 위한 수단이 의심인 겁니다. 1천700 공안은 근본 생명에 대한 자기 자각, 근원적인 면목을 깨달으려는 데서 나왔어요. 화두를 짧고 빨리 들어 저마다 인연된 근원적인 의심을 타파하여 정신적 갈등을 없애는 것이 중요합니다. 문제만 외울 것이 아니라 답을 찾아야지요. 불자들에게 제가 손가락을 튕기면서 이렇게 손가락을 튕기게 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집니다. 마음인가, 몸인가, 죽은 송장도 손가락이 있는데…등등의 말이 오갑니다. 마음이나 부처는 이름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도록 유도하는 것이 수행이지요. 진리에 눈 뜨고 바른 길을 가도록 하는 것이 종교의 역할입니다. 종교를 위한 종교, 즉 광신 맹신은 안됩니다. 어떻게 진리에 눈 뜨고 눈 뜨게 할 것인가에 집중하여 사람들이 바른 눈을 뜨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종교인의 할 일이지요."

수불스님은 최근 부산 연제구 거제동에 안국불교대학을 설립하여 이사장직을 맡았다. 안국불교대학은 오는 3월 2일 개관식과 첫 입학식을 갖는다. 설계에 많은 공을 들였고 일반 대학이나 국제회의실 수준의 강의실과 세미나실 등도 갖췄다. 부산과 전국에 많은 불교대학이 있는데, 안국불교대학은 어떤 점에서 변별력이 있을까.

"이제 시작에 불과하지만 석·박사를 배출하는 대학원대학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불교 교육의 산실로 자리잡았으면 좋겠어요. 시설뿐만 아니라 전국의 강사진들을 고루 모셨습니다. 불교대학은 안국선원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독립적인 기구로 갈 것입니다. 사실 이번에 첫 입학생을 받았는데 안국선원 출신은 10명쯤 되나, 그리 많지 않아요. 저희 재단과 별개로 움직여 불교 저변화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부산 시민과 불자들을 위한 불교대학을 만들려는 것이죠."

인터뷰를 시작할 때 손사래를 쳤던 수불스님은 안국선원의 법당을 꼭 보고가야 한다고 앞장서 기자를 안내했다. 둥근 돔 형식의 법당이 인상적이었다. 법당의 전체적인 구도에서부터 천장 좌우 양편에 '영원히 잠들지 않는 지혜의 눈'으로 이름 붙인 창문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둥글고 둥글었다. 스님은 우주의 기운과 사람의 기운이 합칠 수 있도록 설계를 의뢰했다고 설명했다. 보름달을 닮은 둥글고 둥근 원융(圓融)의 세계가 그곳에 있었다.

·수불 스님은 누구

부산 범어사에서 1975년 지명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지유스님으로부터 사미계를, 고암스님으로부터 비구계를 받았다. 78년 범어사 승가대학을 졸업한 뒤 89년까지 제방 선원에서 안거했다. 1989년 산사의 간화선(看話禪, 화두를 근거로 수행하는 참선법)을 시중으로 가져와 '도심 속 재가수행 1번지'로 평가 받는 안국선원을 개원했다. 사단법인 불국토 상임이사, 불교언론문화상 대표 등을 지냈다. 지금은 부산, 서울, 창원에 절집을 두고 있는 재단법인 대한불교조계종 안국선원 선원장, 안국불교대학 이사장으로 있다. 불가에서 출가 이전의 이력을 묻는 것은 금기다. 다만 스님은 "경남 통영에서 태어나 충청도에서 자랐고 출가한 뒤로는 부산에 살고 있다, 쯤으로 해두자" 고 했다.

사진=이재찬 기자 chan@forest@busan.com
[부산일보 2010년 2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