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취재]낙산사 홍련암과 전당강
범일국사 전당강의 물결치는 소리 듣고 깨달았다

동해바다가 한눈에 펼쳐진 어느 깎아지른 절벽 위에 자그마한 절이 들어서 있다. 그 곳이 바로 홍련암이다. 의상법사가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뒤에 세워졌다는 홍련암은 관음신앙의 헌신처로도 유명하다.
그 곳을 찾게 되면 의문을 갖게 되는 사실이 하나 있다. 바로 법당 마룻바닥에 8cm 크기의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다. 그 구멍의 비밀을 풀기 위해 필자로서는 꽤 오랜 시간을 고민했다.
그 첫 번째 해답은 소리로 관(觀)해 듣는다는 무상선사의 인성염불에서 찾았다.
두 번째는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기 위한 선지식의 혜안으로 바닥의 구멍을 뚫지 않았나 생각된다. 바닥 구멍을 유심히 살펴보면 파도가 법당 마룻바닥을 휘몰아쳐 왔다가 다시 역류하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즉 홍련암 법당의 구멍은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거나, 그도 저도 아니면 관음(觀音) 즉 소리[音]를 관(觀)하기 위해 만들어진 수행의 한 방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일본대학의 호타겐지(堀田建法) 교수 팀의 조사에 따르면 “인간은 눈으로 보는 시각보다는 귀로 듣는 청각을 통해 보다 많은 정보를 받아들인다.
따라서 청각이야말로 인간의 삶에 있어서 유쾌함과 불쾌함을 조성하는 데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보조선사의 『수심결』에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진리에 들어가는 문이 많으나, 너에게 한 문을 가리켜서 너로 하여금 근원으로 돌아가게 하겠다. 그대는 저 까마귀 우는 소리와 까치 지저귀는 소리를 듣는가.”
“예를 들었습니다.”
“그대는 듣는 성품을 돌이켜 보아라. 거기에는 무슨 소리가 들리느냐.”
“거기에 이르러서는 일체의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기특하고 기특하다. 이것이 바로 관세음보살의 진리의 문에 들어간 문이다.”

이렇듯 낙산사 홍련암의 법당 마루 밑에 뚫린 구멍은 분명 깨달음을 얻기 위한 한 수행자가 자신의 견성체험을 그대로 사물로써 형상화시킨 조형물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필자는 그와 같은 구멍 뚫린 소식을 화두로 붙든 지 5년만에서야 그 해답을 찾았다. 첫 번째 의문은 불해 관음전과 낙산사 홍련암이 흡사했다는 의문이었다. 그러나 정작 범일국사의 관음신앙의 해법을 깨달은 것은 지난 9월 15일 밀려오는 전당강의 파도소리를 듣고 깨우쳤다
낙산사에 정취보살을 모신 내력 등이 전강조의 물결을 듣고 깨닫게 됨은 매우 희귀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관조현상을 보고 깨우치게 된 것이다.
낙산사가 의상법사에 의해 관음도량이 되었다면, 범일국사에 의해 비로소 관음과 선이 만나는 계기가 되었다.

범일국사는 명문 귀족출신으로 계림의 호족인 김씨의 후예이다. 15세 때 출가하여 태화연간에 이르러 혼자서 맹세하기를 “중국으로 들어가 구법하리라” 했다.
그런 뒤 당나라로 들어가 마조의 적손인 염관제안 선사를 참문하면서 그의 정신세계가 활짝 열리게 되었다.

염관이 범일을 보자 이렇게 물었다.
“어디서 왔느냐.”
“동국에서 왔습니다.”
“수로(水路)로 왔느냐, 육로(陸路)로 왔느냐.”
“두 가지 길을 모두 밟지 않았습니다.”
“그 두 길을 밟지 않았다면 그대는 어떻게 여기에 이르렀는가.”
“해와 달에는 본시 동과 서가 무슨 장애가 있겠습니까.”
염관선사는 말하였다.
“실로 동방의 보살이구나.”
그리고는 인가하면서 전법계를 주었다.
필자가 해녕시 관조처에서 전당강의 밀려오는 파도의 역류현상을 보고 있을 때였다. 파도가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염관이 범일에게 다그쳤다.

“그대는 어떻게 왔느냐.”
“해와 달에는 본시 동과 서가 무슨 장애가 있겠습니까.”

라고 말하는 범일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범일은 때때로 전당강의 역류현상을 보고 이 소식을 자기 혼자만 간직하고 있음을 못내 아쉬워했고, 마침내 그 소식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려 했다.
홍련암 법당 마룻바닥의 구멍은 전당강 역류현상의 축소판이라 보아진다. 중국에서 깨우친 소식은 홍련암 법당 마룻바닥의 구멍을 통해 많은 수행자들에게 이어져 왔다. 그렇게 해서 그 수행의 비밀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구전되어 내려올 수 있었던 것이다.
지난 9월 15일 우리가 전강조를 보기 위해 관조처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2시였다. 이미 관조처에는 관광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그들은 전강조를 보기 위해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바다 사이로 소흥이 보인다. 2시 30분이 되자 저 멀리 파도가 물결쳐 온다. 그 소리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자 모두들 환호성을 질렀다.
더욱 놀랍고 신비스러운 점은 바다가 일직선으로 갈라져 파도가 20미터 이상 굽이쳐 밀려온다는 것이었다. 파도가 점점 가까이 밀려오자 그 신비스러움에 절로 탄성이 나왔다.
그때였다. 파도가 하늘로 솟구쳐 오르고, 그 사이로 물방울이 맺혀 바다로 떨어져 내렸다. 그 순간 “저 강물에 띄워 차 한 잔 들게나”라고 했던 범일국사의 말씀이 들리는 듯했다. 순식간에 파도는 물결쳐 우리의 시야에서 멀어져 갔다.
전강조를 지켜 본 안국선원장 수불스님은 “염관선사가 범일국사를 첫 대면했을 때 ‘그대는 수로로 왔는가, 육로로 왔는가’라고 말한 의미를 깨달을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는 파도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다가 관조처를 내려왔다.

[禪文化 2003년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