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림 대법회] 수불스님 법문
금강경은 대승의 눈을 틔워주는 길잡이

(게송을 읊어)
수보리 존자의 신심과 노파심이 대승의 눈을 뜨게 하니 천상과 인간이 즐거워 하는구나
보살들은 이미 그러하지만 소승의 사과를 증득한 이들은 어찌해야 마음을 항복받아 보살도를 행할 수 있는지를 알지 못하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좇아 길을 알고 가야겠도다
아라한과를 증득한 수보리조차 보살도를 알지 못하니 부처님의 자비를 받지 않으면 대승의 길을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음이로다
수다원과 이상을 증득한 선남자 선녀인이 어떻게 보리심을 발해야 보살도를 걷고 부처님의 길을 갈 수 있는지를 모르고 있으매 공을 잘 이해하고 있는 수보리가 그 일단의 일을 부처님께 묻게 되는구나
때에 부처님께서는 늘 어리석은 이의 의심을 깨뜨려줄 인연을 설하셨던 바 바야흐로 시절인연이 도래하였음이로다
마음을 비우고 한 생각 돌이켜 근원에 사무쳐 성품을 보면 소승의 신심이 갖춰지고 한 걸음 나아가 마하반야바라밀을 실천하면 보살의 행원이 절로 빛을 발하리라
이 모든 한 때의 인연을 초월하여 유무단상에 걸림이 없다면 제도당할 중생이 어디 있고 제도할 부처가 어디에 모습을 나툴 것인가
허망한 그림자를 만들거나 만들어진 그림자에 더 이상 속지 말고 몰록 돈오하여 무생을 노래할지어다
다겁생을 어리석게 속아 살다가 문득 한 생각 돌이켜 벗어났도다
알고 보면 벗어남도 어리석은 마음, 늘 그 속에서 여여함을 노래했노라

(금강경의 위상과 성립에 대해 개략적인 설명을 한 뒤)
금강경에 대한 이해에는 여러 문이 있고 금강경 오가해 같은 선문의 이해가 주류를 이룹니다만 저는 오늘 선문보다는 교문의 입장에서 한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금강경 첫 부분에 수보리가 부처님에게 나아가 법을 묻는 대목에서, “희유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모든 보살들을 잘 보살피고 잘 부촉하십니다.”하고 찬탄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희유하십니다, 세존이시여!”하고 말한 수보리의 찬탄 대상이 무엇인가 하는 점을 짚고 넘어가고자 합니다. 수보리는 무엇을 두고 희유하다고 했느냐는 것이죠.
지금까지는 많은 이들이 이 부분을 의로 해석해서 부처님과 뜻이 잘 통한 수보리가 부처님이 앞으로 설할 내용을 미리 알고 또 중생들이 부처님께 물으려고 하는 입장을 헤아려서 문답을 이끌어 가는, 그 인연이 희유하다는 식으로 보아왔습니다. 저는 이와는 좀 다른 해석을 하려고 합니다.
저는 수보리가 희유하다고 한 것은 다음에 나오는 구절, 즉 여래께서 모든 보살들을 잘 보살피고 부촉하시는 일을 가리킨 것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수보리 입장에서는 여래가 보살들을 보살피고 부촉하는 일이 매우 희유하게 여겨져서 부처님께 여쭈었다는 말이지요.
저의 이런 해석은 지금까지의 시각을 뒤집는 것이어서 어쩌면 당혹스럽게 느끼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다음 구절과 연결을 시켜보면 제 주장의 근거가 더욱 확실해질 겁니다.
수보리가 이어서 묻습니다. “세존이시여, 선남자 선녀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켜서 마땅히 어떻게 머물며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받아야 합니까?"
여기에서 ‘선남자 선녀인’은 소승사과를 증득한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을 가리키는 것으로 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금강경이 소승을 얘기하면서 대승의 인연을 열어주기 위해 부처님이 설하신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소승사과도 보리심을 발했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즉 깨달았다는 겁니다. 그러면 무엇을 깨달았느냐. 혜안을 열었다고 얘기합니다.
소승사과도 돈오했으나 점수의 경계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아직 법안에는 이르지 못한 상태입니다. 법안을 얻은 보살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공부를 더 해야 하는가, 하고 수보리는 여쭙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 즉, 수보리는 아직 부처님의 말씀을 미리 헤아릴만한 수준에 이르지 못한 상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수보리가 소승에서 대승으로 눈을 떠서 부처님과 문답을 주고 받는 장면은 금강경 제17분에 가서야 등장합니다.
그 때문에 도입부에 있는 희유하다는 말은 부처님과 수보리가 뜻이 잘 맞는 것을 가리킨다고 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저의 이 시각은 자칫 종래의 금강경 해석을 거스르는 것이어서 저도 매우 조심스럽습니다만, 모처럼의 귀한 자리이기에 허물없이 의견을 내보는 것입니다.

금강경은 소승 아라한과를 증득한 수보리가 대승의 보살도를 공부하는 방법을 부처님에게 묻고 그러며서 대승의 눈을 떠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경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혜안에서 법안으로 거듭나는 지혜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지요.
금강경은 범부의 육안이나 신통력이 있는 천안으로는 감히 들여다 볼 수조차 없는 경전입니다. 최소한 혜안으로 봐야 뜻을 알고 공부가 깊으면 법안을 뜰 수 있는 길잡이입니다. 함부로 금강경을 대하면 모두 뒤집어져 버립니다.
수보리의 입장을 잘 이해하면 금강경의 줄거리가 일목요연하게 회통이 됩니다. 그러나 수보리가 부처님과 통한다는 식의 선입견으로 금강경을 대하면 앞뒤가 종잡을 수 없어지고 매우 어려워집니다.
부처님은 어렵게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정견을 갖고 대하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하십니다. 틀릴 지도 모르지만 제 시각대로 한번 금강경을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수보리의 간절한 공부심을 확인한 부처님은 기쁜 마음으로 대승으로 나아가는 보살도에 대해 하나하나 가르침을 베풉니다. 이것이 금강경의 본체입니다.
부처님은 내가 모든 중생들을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들게 하리라, 하시고 그러나 상相어 머물은 성문들은 아직 상에 얽매어 유여열반 밖에 이루지 못함을 경계하신다.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내는 소승들은 갖은 분별에 스스로 휘둘려 가령, 도를 얻는 데도 돈오점수니 돈오돈수니 하는 여러 인연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여래의 자리는 무오무수無悟武修, 깨침도 닦음도 없는 자리입니다. 혹은 그마저도 벗어난 자리이지요.
그럼에도 근기란 또한 천차만별이어서 범부에서 보살까지 이르는 단계가 엄존합니다. 범부로서는 소승을 이루기도 지난합니다.
소승이라도 이루기 위해 정진해야 합니다. 소승을 배우지 말라고 가르칠 것이 아니라 소승에 머물지 말라고 가르쳐야 합니다.
달마 이래 선지식들은 이 지난한 단계를 밟지 않고 범부에서 단번에 보살도에 이르는 길을 내느라 오랜 세월 힘써왔습니다. 그것이 선가의 역사입니다. 금강경에 대해서는 오가해 등을 통해 그러한 방편을 구했습니다. 그런 선사들의 노력에 파란을 일으키는 지견을 오늘 제가 감히 낸 것입니다.
그러나 제 부족한 지견도 송광사에서 마련한 법석에 나오기 위해 나름대로 연구를 하다가 나온 가설이니 이 모두가 대중의 은혜입니다. 대중의 힘은 이처럼 큽니다.

부처님은 수보리에게 가장 큰 보시는 보시라는 생각이 없는 보시임을 가르칩니다. 부처님의 보시는 이미 완성된 보시입니다. 상에 집착하지 않고 보시를 하는 보살은 무량복덕을 이룬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해서 머무른 바 없이 마음을 내라應無所住 以生其心는 말씀에서 수보리는 몰록 깨치고 눈물을 펑펑 쏟으면서 비로소 법안을 뜨게 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아무리 큰 공덕도 상을 내지 않고 보시하는 보살도만 못하는 게 금강경의 요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혜를 얻는 것도 힘들지만 얻은 지혜를 버리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지혜는 약이지만 병이 나으면 그 약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해공제일解空第一이라는 수보리도 혼자 힘으로 소승지혜 없애는 공부를 하지 못하고 부처님 가르침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수행자도 지혜를 얻고 또 지혜를 없애기 위해서는 선지식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사부대중들은 모두 간절히 공부를 지어 금강경이 제시하는 도리를 제대로 깨치는 인연을 얻어 갖기를 빕니다. 성불하십시오.

[카메라 만행]

[松廣寺 2006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