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에 부는 다도 바람
선다일미(禪茶一味), 이제 중생 속으로

한국차에 차인은 많은데 스승이 없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2003년 우리 차문화계는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한다. 일본 다도가 센노리큐 이후 약 400여 년 동안 이어져 온 데에 비해 우리는 30년 안팎의 역사 속에 우후죽순으로 차회가 생겨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에는 기독교, 카톨릭, 원불교, 천태종까지 가세하고 있는데다 순복음 교회까지 다도회 결성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에 선다일미(禪茶一味)의 연원인 산사의 선다회(禪茶會) 존립에 위기감이 표출되고 있다. 이러한 때, 최근 차와 선을 생활 속에 실천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받고 있는 차회가 있다. 부산 안국사 선다회가 바로 그곳이다. 『차의 세계』가 지난 13일 집중 취재했다.

“다관을 벗삼아
안국선원을
오르내린 4년,
그동안 끝없는
내면을 관조하며
본래면목을 찾는
마음으로 도반들과
함께 차회를
열었습니다”

다심의 고향으로 널리 알려져 ‘한국 차문화의 1번지’로 손꼽히는 부산. 이 곳에서 차가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지리적으로 일본과 인접해 있어 일본 다도의 영향을 받았고 다승들의 활약도 컸기 때문이다.
현재 부산에서만 차를 배우는 사람이 무려 500여 명에 이르는 놀랄 만한 선다회가 있어 주목받고 있다. 차계를 긴장시키고 있는 안국사(선원장 수불) 선다회가 바로 그곳인데, 부산, 창원과 서울까지 합치면 800여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차를 선 속에 실천해 오고 있으니 가히 놀랄 만한 일이다.
통도사 선다회, 삼광사 다도회 등 많은 선다회가 있었지만 이처럼 많은 인원이 선다일미를 생활 속에 접목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차와 선은 한길

태평산 자락에 위치한 고즈넉한 안국사를 찾은 것은 지난 13일 오후 1시. 선실에 들어서니 100여 명이 앉아 선다일미를 실천하는 모습이 장관이다.
이날의 화두는 ‘다관’이었다. 법운화 안국사 다도 선생의 손놀림에 따라 일사불란한 행다가 시작되었다. 그토록 많은 인원이 있음에도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손놀림에는 찻잔 속으로 떨어지는 찻물을 부처님 몸이라고 말하듯 깨달음으로 가는 간절한 믿음만 있을 따름이다.
안국사가 다도회를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차회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는 1999년이었다. 당시 법운화 보살을 다도 선생으로 영입하여 본격적으로 다선일미를 중생 속에 퍼뜨렸다. 차를 선 속에 접목시킨 것은 마조도일(馬祖道一ㆍ709~788)의 ‘평상심의 도’에서 비롯된다. 마조의 정신을 이은 수불스님의 지도에서 시작해 ‘차와 선은 한길’이라는 것을 직접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시작이 이런 만큼 안국선원 차회는 선을 우선시하는데, 이것이 여느 차회와 다른 점이다. 차를 하되, 일체의 말이 없는 것도 특징이다. 어느 보살에게 선원에서 차를 마시는 이유에 대해 묻자 “차를 마시면서 도반들과 친목을 도모할 수 있고, 차를 통해 선 공부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안국사 다도회를 지도해 온 법운화 보살에게 안국사와의 인연은 매우 소중하다. 그는 “다관을 벗삼아 안국선원을 오르내린 4년, 그동안 끝없는 내면을 관조하며 본래면목을 찾는 마음으로 도반들과 함께 안국선원에서 차회를 열었다”면서 “처음 차회를 열었을 때 햇차의 차향이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선다일미, 중생 속으로

1년 365일 차를 생활화하는 것에 중점을 둔 안국사 다회는 이제 그 활동을 서울과 창원으로까지 넓히고 있다. 안국선원 개원식 육법공양을 시작으로 단오절 때 창포 다례를 비롯, 꽃꽂이에 차를 접목하는 등 선다일미를 생활 속에 실천하는 데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안국사 다회 사람들은 참선을 할 때 마음을 고요히 하고 생각을 끊는다. 그저 차를 마실 때에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맛을 음미할 뿐이다. 옛 선승들은 다도와 참선이 모두 깨달음을 추구하기에 차맛이 깊지 않을 때에는 선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선의 경지에 몰입하려는 그들의 손이 아름답다.

선실의 차회를 벗어나 안국사 뜨락의 잔디밭에서 차회가 열린 날, 한 사람 한 사람이 다선일미의 경지에 빠져들었다. 잔디밭에 빙 둘러앉아 찻잔을 돌릴 때, 다관 물방울 사이로 맑은 햇살이 빛나고 있었다. 

[茶의 세계 2003년 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