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위기의 현대문명 禪으로 치료하라
절망의 순간 선으로 극복하라

백척간두에 처해 있을 때 우리는 그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이 문제가 2001년 오늘의 화두이다.
오늘날을 흔히 우리는 위기의 시대라고 한다. 문화ㆍ과학ㆍ자본이 발달할수록 생겨나는 위기의식의 극복을 위한 하나의 처방이 바로 선이기 때문이다. 선문화사는 창간 1주년 기념으로 “위기의 현대문명 선으로 치료하라”라는 주제를 조심스럽게 접근하면서 위기문명에 대한 처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필자는 2001년 7월 17일, 40도를 오르내리는 불볕 더위를 하북성 조현(趙縣) 땅에서 맞았다. 조현은 당말 중국 선종이 낙양에서 하북으로 재편되었던 그 중심무대였다.
조현은 당대 최대의 다리인 조주석교를 비롯하여 다라니경당과 조주선사의 체취가 물씬 풍기는 조주(趙州) 관음원(觀音院)이 자리잡고 있다. 그 뿐 아니라 임제(臨濟)의 행화도량 임제사와 이조 혜가(慧可)의 전법도량 이조사가 남아있다. 중국 선종이 하북(河北) 땅으로 재편되는 것이 당말부터 조심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조현 땅이 지니는 역사성이 매우 강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그 땅에서 살았던 조주나 임제의 후예들이 어떠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중국인들의 삶은 자유분방할 뿐 아니라 형식적인 타인에 대한 의식은 전혀 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었다.
조현의 역사성과 그곳에 살고 있는 중국 사람들의 생활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들의 생활모습으로 선의 사상이 문화와 생활을 통해 실천되는 현장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세기 인류의 중심은 선에서 찾아라

선은 절대절명의 위기에 처할 때 그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을 느끼게 한다. 선은 매우 과격하면서 온순하며 자연적인 흐름을 지니고 있다. 서양의 철학자들은 21세기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은 선밖에 없다라고 일찍이 말한 바 있다.
중국 사람들이 만약 평상심의 도를 실천하지 않는다면 분쟁의 소지가 곳곳에서 일어난다. 그것도 40도를 오르내리는 불볕 더위를 극복하는 길은 오직 평상심밖에 다른 도리가 없을 것이다. 또한 중국의 대중교통은 정시보다 30여분 정도 늦게 출발해도 누구도 항의하지 않는다고 한다. 오직 평상심만이 중국 사람들의 정서임을 직감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중국인들의 평상심의 발현은 역사적으로 고승 임제와 조주에게서 찾을 수 있다.
임제가 정정현 임제원에 한가롭게 유유자적하며 지내고 있을 때 어떤 승이 찾아와서 묻는다.
“어떤 것이 차별없는 참사람(無位眞人)입니까.”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납승의 코를 잡아당기면서, “이르고 일러라”하고 상대에게 빈틈을 주지 않았다.
납승이 말이 없자 임제는 그 납승을 밀어버리면서 말한다.
“지위없는 참사람이 이 무슨 똥막대기인가.”
그리고 곧 그 자리를 떠나버린다.
임제종의 종지가 되어버린 참사람이란 바로 나를 찾는 길이다. 나를 찾는다는 것은 닦음과 깨달음의 견처를 잘 드러내는 것이다.
임제는 철저하게 무위진인의 도리를 깨친 사람의 입장에서 간파하여 말에 떨어진 납승들을 깨우치게 했다.
하북성에 선이 들어온 것은 이조 혜가로부터 시작되었다. 이어 임제와 조주에 의해 선이 중국에 정착했던 정신적 토양은 오늘의 중국인들의 사고관 속에서 쉽게 발견된다. 이미 천년 전 임제와 조주가 설파한 나를 놓아버리라는, 즉 나를 철저히 버리라는 그 정신이 천년 후 하북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도 여전히 실천되고 있다.
필자는 조현시내의 민중들로부터 이러한 평상심의 정신을 읽을 수 있었다. 조현시내의 민중들은 온통 거리로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매일 이와 같이 군중들이 조현시내에 모인다고 한다. 그들은 모두가 잠에서 깨어나는 정신적 삶을 누리기 위해 천년 전 임제와 조주가 말한 삶의 흔적을 온몸으로 되돌아보고 있는 것이다.

정신적 공허 선으로 치료하라

선으로 인류의 고통을 치유하라는 말을 마치 병원에서 병이 든 몸을 치료하는 식의 물리적 방법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이는 선의 비밀인 돈오적 삶을 말한다. 돈오적 삶이란 급할 것 없이 평상심 대로 살아가라는 것이다. 우리 한국인들은 마음이 급하다. 그래서 ‘빨리빨리’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사용한다. 조사선의 법향이 드리운 중국인들은 급할 것이 없다. 그래서 중국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말은 ‘만만디’이다. 물 흐르듯이 살라는 것이다.
백림선산 방장 정혜화상의 말이 생각난다.
“우리의 삶은 고통의 연속이지만 선의 길을 터득해 나가면 일순간 그 고통은 사라지고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그 정신세계는 선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선의 정신세계를 맛본 사람을 극락예토에 난 사람이라고 말한다.
가네마루소테쓰(金丸宗哲:임제종 남선파 청태사 주지)는 이렇게 답을 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병든 육체이다. 인간의 최대 고통은 병마와 싸워 이기는 일이다.”

우리의 삶은 고통의 연속이지만 선의 길을 터득해 나가면
                         일순간 그 고통은 사라지고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그 정신세계는 선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의 만병의 원인은 자신이 지은 법집에서 비롯되었다.
파계사 성전암의 철웅선사는 모든 병의 원인은 스스로 짓는다고 했다. 그래서 스님은 모든 병의 원인은 병원에서 비롯되었으며 병원이 없으면 병은 없어진다는 것이다. 여기서 병원은 사람들이 스스로 지은 병을 즉각적으로 치료가 가능한 곳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절대적 치료의 대상으로 치부한다.
『대지도경(大智度經)』에는 병의 원인을 다음과 같이 정확히 진단하고 있다.

병의 원인을 알면 병을 고칠 수 있는데, 일체의 병의 원인을 모르면 병을 치료할 수 없다. 그래서 수행자의 소의(小醫)가 아는 것을 아는 것처럼, 보살마하살의 대의(大醫)와 마찬가지나 병에 대해서 모르는 게 없으며 약에 관해서도 모르는 것이 없다.

마음의 병은 스스로 짓는다는 말에 좋은 예가 있다.
대구에 100억을 가진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병원 입원중에도 비서로부터 매일 들어오는 돈의 액수를 체크했다. 3개월 후면 암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은 죽는 순간까지 돈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않았다고 한다. 건강하지 않으면 돈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또한 병원 친구와 짜고 한 친구를 암으로 거짓진단을 내리게 했는데 암이 아닌데도 그 사람은 시름시름 앓게 되었다는 얘기가 있다. 모든 병은 마음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스스로 말해주는 결과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치유의 대상은 마음이며, 마음의 치유는 선으로 이룰 수밖에 없다.

중국 사람들의 마음은 이미 선에 깊이있게 도달해 있다.
       그들에게 오늘의 대륙적 사상의 물줄기는 선에서 흐르고 있었다.
                                  천년 전 이제의 무위진인과 조주의 무자 화두를
                                          오늘의 하북사람들의 표정속에서 읽어낼 수 있었다.

위기의 처방 선밖에 없다

정치적으로 위기에 처할 때에도 모든 것을 화두로 풀면서 위기를 모면하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보아 왔다. 또 정치가들은 선승을 찾아 정치적 해법을 찾는 경우도 있다.
혜가와 달마가 나눈 그 유명한 안심법문이 있다.
혜가는 달마에게 “저의 마음이 불안합니다. 저의 마음을 편안케 해주시옵소서”라고 간절히 청한다. 이 때 달마는 말한다.
“이미 너의 마음은 편안케 해주었노라.”
이렇게 시작된 안심법문은 선가의 법을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은 온통 불안정한 시대이다. 일찍이 지식인들은 그 불안정한 시대에 마음을 안락케 해주는 방법이 바로 선밖에 없다고 간파하기도 했다.
최근 『나는 산사로 출근한다』라는 책이 출간되어 세간에 화제이다.
이 책은 현대인들의 직장생활의 스트레스를 현명하게 제거하는 방법으로 생활 속의 선 수행을 소개하고 있다. 여기서 산사는 선의 향기가 있고 조사의 체취가 있으며 마음의 고향이다. 매일 산사로 출근하듯 생활하여 마음을 안정케 한다는 내용이다.
최근 선에 대한 열풍이 한국 사회 전반에 확산되어 내가 누구인가를 찾아 시민선방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근심걱정을 잊고 좌선삼매경에 빠져들면 불안한 마음이 진정된다는 것이다.
혜가와 달마의 문답이 오늘의 이 시대에도 되살아나고 있는 것은 그 진리가 너무나 간절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모두가 집착에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 평상심으로 살면 마음의 병은 사라진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기초가 필요하다. 기초는 나를 버리는 공부인데, 그 나를 버리는 공부는 오직 선밖에 없다.
나를 버리는 공부의 길에 접어들면 마음의 병은 일순간에 사라진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번뇌와 욕망이 넘쳐 있는 혼탁한 세상이다. 그렇다면 과연 세속의 사람은 깨달을 수 있는가. 서울 한복판 안국선원을 찾아보면 세속의 사람도 깨우칠 수 있는 사실을 보게 된다.

조사선이 흐르고 있는 땅 중국인들의 평상심

1945년 일본은 2차대전 패전으로 말미암아 허탈한 상태에 빠졌다. 그런데 중국으로부터 선을 도입하여 패전의 슬픔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었다. 또한 일본의 선은 중국으로부터 도입한 선을 일본 선으로 새롭게 변모하여 스즈끼(鈴木六拙)에 의해 서양으로 널리 소개되기도 했다. 그 밑바닥에는 다도정신이 배어 있어 오늘의 일본 정신을 떠받치는 기둥이 되기도 했다.
오늘날 끊임없는 인간의 욕망으로 인한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임제와 마조, 황벽이 타일렀던 조사선밖에 없다. 고불총림 방장 서옹선사 역시 인류를 구제할 방법이 조사선밖에 없다고 역시 말하기도 했다.
필자는 중국 하북성에서 위기의 현대 문명을 선으로 치료할 수 있다는 해답을 임제원 구지(舊地)에서 얻었다.
중국 사람들의 마음은 이미 선에 깊이있게 도달해 있다. 그들에게 오늘의 대륙적 사상의 물줄기는 선에서 흐르고 있었다.
그 사상은 하북성 정정현 사람들의 눈빛에서 찾는다. 필자는 잠시 ‘옛진주’라는 간판이 걸려 있는 곳에 잠시 머무르게 되었는데 중화인의 표정에서는 전혀 서두름이 없었다. 오직 평상심으로 살아가는 것 같았다.
임제촌의 아이들에게도 그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그들은 자연에 동화되어 살아가고 있었다. 천년 전 임제의 무위진인과 조주의 무자 화두를 오늘의 하북사람들의 표정 속에서 읽어낼 수 있었던 것은 중국에서 면면히 흐르고 있는 선의 물줄기를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기회였다.

[禪文化 2001년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