⑥ 경남 함양 벽송사

禪-敎 겸수 전통 되살린 간화선 전통도량

남녘땅 최고의 영산(靈山)으로 이름나 수많은 등산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지리산. 이 지리산 자락에 한국 간화선의 근본도량 벽송사(碧松寺)가 1,00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한 채 불향(佛香)을 은은하게 뿜어내고 있다.

우리나라 3대 계곡중의 하나인 지리산 칠선계곡으로 가는 초입의 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벽송사는 조선 중종 15년(1520년)에 벽송지엄(碧松智嚴)선사가 머물며 부용영관 스님 등 후학을 지도한 선찰(禪刹)이다.
지엄 스님이 창건했다고도 하지만 보물 474호로 지정된 신라시대 3층 석탑이 있어 벽송사는 신라 말이나 고려 초에 창건되었고, 지엄 스님이 중창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엄 스님은 벽송사에서 환암혼수(幻庵混修)-구곡각운(龜谷覺雲)-벽계정심(碧溪淨心)-벽송지엄(碧松智嚴)-부용영관(芙蓉靈觀)-청허휴정(淸虛休靜)으로 이어지는 태고보우의 선맥을 형성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스님이 초학자들에 가르친 규봉종밀(圭峰宗密)의 《도서(都序)》, 《절요(節要)》, 대혜종고(大慧宗)의 《서장(書狀)》, 고봉원묘(高峰圓妙)의 《선요(禪要)》는 오늘날 강원에서 사집(四集)의 교과과목으로 채택돼 학인들의 교재로 사용되고 있다.

이처럼 벽송사는 간화선 공부법에 의해 도제를 양성하여 간화선풍을 진작시킨 도량으로, 간화선 제1 조정(祖庭))으로서의 역사를 가진 한국 간화선의 근본도량이 되는 것이다.

선맥을 이어오던 벽송사는 숙종 30년(1704년) 방화로 불에 타버린 것을 지안대사가 신도들이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완전히 중수했으나 6ㆍ25 때 참화를 면치 못했다. 벽송사는 6ㆍ25 당시 인민군의 야전병원으로 사용돼 국군과 경찰의 소탕작전 중 사찰 전체가 불탔다. 마을 노인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벽송사에는 400~500명의 환자가 즐비했다고 한다.

이후 6.25 지나고 스님 한두 명이 모여 옛 터에 집을 짓고 살기 시작하면서 재건의 불씨를 지폈다. 근근히 명맥만 이어오던 벽송사는 1960년대 초에 원응구환 스님(현 서암정사 주지)이 너와집 형태의 건물을 지으면서 가람을 중창하기 시작, 5~6년 전 제대로 된 사찰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3년 전 현 주지 월암 스님이 소임을 맡으면서 간월루를 중수하고, 2007년 안국선원 수불 스님이 중창불사금 20억원을 무주상보시해 청허당, 안국당, 백장루, 해우소, 부용암, 초월당, 종각 등을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벽송사에는 원통전이 있는데, 예전에는 보광전이었다고 한다. 보광전에는 아미타삼존불이 있었는데, 어느 때인가 아미타불과 대세지보살이 도난 당하고 관세음보살만 남게 돼 명칭을 변경했다고 한다. 현 대웅전은 선원으로도 사용되는 곳이다.

경내에는 민속자료 제2호인 ‘벽송사 목장승’을 비롯해 부도 3기가 있다. 부도 위쪽으로는 위로 쭉 뻗은 ‘미인송’과 ‘도인송’이 자리하고 있어 벽송사의 선기(禪機)를 느끼게 해 준다.

“禪會 통해 조계종 수행모델 재정립”
함양 벽송사 벽송선원장 월암 스님

“선회는 禪의 이론과 실참을 함께 참구하는 선ㆍ교 겸수를 말합니다. 선 수행은 이론에만 치우쳐도 안되고, 실참에만 국한돼도 안됩니다. 이 시대 수행ㆍ교화의 모범으로 만들어 조계종 수행 모델을 재정립하는데 노력할 것입니다.”

2006년부터 벽송사 벽송선원장을 맡고 있는 월암 스님〈사진〉은 “선의 이론적 토대를 구축하고 실참을 병행해 명안종사 탄생의 기틀을 마련하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스님은 “총림이나 큰 사찰에는 조실 스님이나 방장 스님이 계셔서 의문점이 있을 때 직접 지도를 받을 수 있지만, 그 외 사찰에서 수행하는 납자들은 절실한 아쉬움을 토로했다”며 “선회를 통해 납자들이 큰스님들의 지도를 받고, 강의를 듣고 토론을 통해 탁마해 미비한 점을 보완해 나가고 있다”고 벽송사 선회의 의미를 설명했다.

스님은 “임제록에 ‘수처작주(隨處作主) 입처개진(立處皆眞)’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사람이 곧 부처ㆍ인간 중심의 불교’라는 의미로 수좌들과 불자 모두가 이 말을 잘 새겼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스님은 또 “견성성불(見性成佛) 요익중생(饒益衆生)이라는 말은 자비와 지혜를 함께 닦는다는 의미로 선종의 종지를 표현한 것”이라면서 “자신의 수행도 중요하지만 중생을 이롭게 하는 일에도 열심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님은 올 10월말부터 재가자들을 위한 선회를 준비해 ‘한국 간화선의 제1 조정(祖庭)’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벽송사를 가꾸어갈 방침이다. 월암 스님은 “불가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사부대중이 함께 수행하는 모습”이라며 “사부대중이 함께하는 무차선회 등을 마련해 모든 이의 수행 귀의처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월암 스님은 “벽송사 선회는 현재로선 조계종 내에서는 유일하지만, 조계종의 모든 사찰에서 열렸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전했다.

- 고 승 -
벽송지엄(碧松 智儼, 1464~1534)

벽송지엄 스님은 세조 10년(1464) 전북 부안 송씨 집안에서 태어났다. 호는 ‘야노((野老)’, 당호는 ‘벽송당’, 법명은 ‘지엄’. 어려서부터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세 칼쓰기를 좋아하고 병법을 즐겨 읽었던 스님은 무과에 합격해 1491년 여진족이 침입하자 장수로 출전해 공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스님은 당시 전쟁의 참상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며 크게 괴로워했고 28세에 출가한다. 벽계정심 스님 등에게 수학한 뒤 중종 3년(1508) 금강산 묘길상암에서 수행을 하던 중 《고봉어록》을 보다 깨달음을 얻었다.

1520년 함양 지리산에 들어가 초암(벽송암)을 짓고 머물며 하루 한 끼만 먹고 수행에 전념했다. 1534년 11월 1일 제자들을 수국암으로 모은 스님은 《법화경》을 강의하고, 이날 입적했다.

이강식 기자 lks97@ggbn.co.kr
[금강신문 / 2008년 9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