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과 실참병행, “바로 알고 바로 정진하자”

2008 벽송선회 ‘문없는 문’ 열었다

벽송 두 그루 위에 산새가 우는 고즈넉한 지리산 한자락 사찰에서 게송이 들려온다. 파르라니 머리를 깍은 백여 명의 비구ㆍ비구니스님들이 한데 모여 있다. 수행자에게 결제ㆍ해제가 따로 없기에 하안거가 끝난 초가을에도 낮에는 이론을, 밤에는 실참을 한다.

간화선 근본도량 지리산 벽송사에서 9월 6일 벽송선회(선수 월암)가 입재식을 시작으로 3ㆍ7일간 수행의 결사에 돌입했다. 2006년에 이어 제2회를 맞는 이번 벽송선회는 비구 34명, 비구니 56명 등 모두 90명의 납자가 9월 6 ~ 26일 21일간 산철결제에 들어갔다. 이들은 새벽 3시부터 저녁 9시까지 오전에는 이론을, 그리고 아침과 저녁에는 4시간씩 실참수행하게 된다.

“본래면목 무일물(本來面目無一物). 마음은 안에도 있지 아니하고, 밖에 있는 것도 아니고, 중간에도 있는 것이 아니다. 어디에 있는 것인가.”

입재식에서 덕숭총림 수덕사 수좌 설정 스님은 스님들을 격려하고자 ‘본래무일물’화두를 제시하는 게송을 읊고, 법문을 시작했다. 설정 스님은 “아무리 좋은 옥이라도 갈고 닦지 않으면 좋은 그릇을 만들 수 없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무조건 정진해서 공부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바로 알고 바로 정진을 해야 한다”며 “많은 수선납자들이 잘못된 선수행으로 선병에 걸려 고생하고 방황한다. 지리산 벽송사에 모인 납자들은 선의 이론적 토대를 다지고 수행 정진해 선사들의 뜻을 이어받길 바란다”고 격려했다.

이번 결제는 한국전통수행방식 선교쌍수 가풍으로 진행된다. 월암 스님은 “벽송선회 이전에 고려 담선법회, 일제강점기 용성 조사 만일참선결사, 성철 스님 백일법문, 가깝게는 서옹 큰스님의 참사람결사도 선교겸수의 장이었다”고 설명했다.

선회에서는 벽송사 선원장 월암 스님의 ‘간화선 수행의 바른 길’, 고우 스님 ‘간화선 수행과 정견’, 혜국 스님 ‘조사선- 최상승 수행’, 영진 스님 ‘발심과 실참’, 수불 스님 ‘간화선 수행과 신앙’, 설우 스님 ‘선요’, 지환 스님 ‘간화선 수행’, 법산 스님 ‘한국 선종사’ 특강 등이 열려 수선납자들이 이론을 다진 후 실참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한다.

전통강원에서는 이론 위주로, 선방에서는 실참 위주로 행해지는 현재 불교승려교육 현실에서 납자들이 모여 큰스님 강의와 토론으로 이론을 쌓고 다시 실참실수하는 선회는 드문 기회이기도 하다. 조실스님이 없는 사찰에서는 선담을 나눌 기회가 없기에 큰스님들과의 선담을 나누고자 법랍 30년부터 초심자까지 연령을 불문한 납자들이 모였다.

선회에 참가한 구미 금강사 해관 스님은 “첫 벽송선회에 이어 두 번째 벽송선회에도 참석했다. 선회는 선이론을 배우고, 스님들과 자유로운 토론을 할 수 있어 선수행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의 종교편향 사건으로 전 불교계가 격분한 지금, 역설적으로 중생교화 이전에 수행을 올곧게 하는 수행자 덕목 또한 불교계의 화두로 떠올랐다. 외부환경에 굴하지 않고 신심과 원력을 다해 선학을 연마하는 벽송선회에서 또다른 ‘호법’의 길이 비춰졌다.

벽송사 선원장 월암 스님 인터뷰

“선교겸수의 새 지평될 것”

“선의 이론적인 토대를 구축하고 실참실구함으로 명안종사가 탄생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겠습니다.”

벽송사 선원장 월암 스님은 “선수행은 이론과 실참 어느 것에도 치우쳐서는 안 된다”며 “벽송선회는 선교겸수의 새 지평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스님은 “벽송사는 벽송지엄 선사의 개창 후 부용영관을 거쳐, 청허휴정, 부휴선수 양대선맥이 전개된 곳이다. 두 선사 이후 108분에 이르는 조사스님이 탄생해 ‘108조사행화도량’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고, 숭유억불 시대에도 강원과 선방이 함께 열려 강원학인과 실참납자를 길러냈다”고 설명했다.

신심과 원력을 다해 실참하는 수행도량답게 벽송사는 재가자를 비롯한 사부대중이 함께 수행하는 도량이다. 월암 스님은 “간화선을 하면 현실에서 행복해져야 한다. ‘간화선은 행복선’을 주제로 10월 말 재가선회를 개최하겠다”며 “재가와 출가자가 함께 하는 무차선회, 템플스테이 등으로 벽송사는 스님들만의 수행공간이 아니라, 사부대중이 함께하는 수행도량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벽송사는?

벽송사는 조선 1520년(중종 15)에 벽송지엄 선사가 창건했다. 벽송지엄 선사는 간화선을 제창한 송나라 대혜 선사와 임제종을 대표한 원나라 고봉 화상의 종지종풍을 드날린 분으로 후학을 지도함에 있어 <도서><절요><서장><선요>로써 간화참구하게 했다. 오늘날 한국불교전통강원의 사집교과목으로 <도서><절요><서장><선요>가 채택된 것은 벽송산문 영향으로, 벽송사는 간화선 제1조정(祖庭) ‘한국 간화선 근본도량’의 의미를 갖는다.

글ㆍ사진=노덕현 기자 dhavala@buddhapia.com
[현대불교신문 / 2008년 9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