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장 소멸은 수행 통해 스스로 해야 합니다”

생활 속의 간화선수행
안국선원 집중수행기

      “마음 속 먼지 털어내고 부처님 말씀 따르면 동전의 앞과 뒤도 아닌 동전 그 자체입니다”

#죽을 각오로 들어간 선원

나날이 삶은 꼬여만 갔다. 갑갑하고 힘들어지자 삶으로부터의 도피를 고통의 해결책으로 삼은 지 오래였다. 부처님 제자로 살아온 지난 시간들이 있었고 또 그 가르침에 따라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고 했지만 일시적일 뿐이었다. 언제인가부터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삶에 대한 무감각과 무관심이 날 짓누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 삶을 산다기 보다는 여기저기에 끌려다니는 삶일 뿐이었다. 또 뭔가를 하지 않을 때에는 불안감이 밀려왔다. 다 놓아버리고 싶지만 놓아지지도 않고 뭔가를 할 때는 부담감이 날 짓이기고 있었다.

때마침 서울 안국선원(주지 수불)에서 구랍 12월30일부터 일주일 간화선 집중수행을 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깨닫고자하는 의지보다는 세상의 모든 것과 연을 끊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으로 신정 연휴를 서울 안국선원에서 보내기로 했다.

#다리 틀고 5분도 앉지 못해

구랍 30일, 수불 스님은 집중수행에 동참한 150여대중에게 첫 법문을 설했다. 많은 재가 수행자들을 보니 의아했다. 그들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여기 왔을까.

수불 스님은 간화선 기초반 수행자들에게 “첫째 믿고 행할 것, 둘째 지극정성을 다해 나를 확인할 것, 셋째 간절한 마음으로 할 것”을 강조하고 “‘나’는 뭔가에 의해 움직이는 괴뢰와 같은 존재다. 지금 눈앞의 일만을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라”고 당부했다. 또 “망상이 일어나면 없애려 하지 말고 망상과 더불어 함께 해야 한다”며 “‘탄지(彈指; 손가락을 튕김)’할 때 누가, 무엇이 손을 튀기는 것이냐?”는 화두를 내렸다.

자리를 잡고 앉자 온갖 번뇌 망상이 미친 듯이 날뛴다. 겉잡을 수 없는 생각의 소용돌이를 바라보며 그냥 즐겼다. 내가 해야 할 일들에 대해서, 다짐, 포부 등 미래와 과거에 대한 생각을 아주 충분히 해버렸다. 하지만 생각의 끈은 한 시도 끊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런 망상들이 조금 잠잠해지자 ‘탄지’화두를 계속 떠올렸으나 15분을 제대로 하기 힘들었다. 삭신이 쑤시고, 깨달을 수 있을까 하는 의심도 하면서 다리를 풀어버렸다. 녹초가 되는 것 같았다. 도무지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믿고 따르라”고 보살님들이 계속 충고를 해주셨다.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러다 병나겠다 싶어 첫 날 수행을 마쳤다.

#막막함과 인내심

둘째 날 오전 10시, 어김없이 스님의 법문은 시작됐다.

“나로 하여금 이렇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알아채라”는 스님의 첫 말씀은 도무지 답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이었다. 이어 스님은 내 맘을 알았다는 듯 “막막한 것 그것이 바로 공부가 되는 것이다. ‘남들은 뭔가를 느낀다는데 왜 난 안 되는가’라는 생각을 할 필요 없이 그냥 한번 시간을 보내보라”며 내 마음에 채찍을 가했다.

오늘은 90분 동안 좌선을 해보자. 그날의 화두는 바로 그것이었다. 온갖 번뇌 망상이 소용돌이 치다가도 50분을 넘기다 보면 다리를 틀고 앉아 있는 고통을 넘기기 위한 인내만이 필요하다. 아침 10시 법문을 시작할 때부터 저녁 9시까지 버티고 또 버티는 게 다였다. 뭔가를 해냈다는 성취감과 알 수 없는 가벼움이 짙고 무거운 겨울바람을 이기게 하는 힘이 됐다.

#먼지를 비추는 빛

“언제 결과가 나올지, 원하는 방향으로 나올지도 모르는 일이니 그냥 밀고 나가라. 목적지에 이르러서 되돌아보면 알게 된다. 외통수에 걸려 들어간 상태로 들어가야 한다.”

새해가 밝아도 수불 스님의 법문은 3일째 변함이 없었다. 법문에 서론 본론 결론도 강약도 없다. 모두 강한 본론이다. 여전히 난 무덤덤하다. 다리를 틀고 또 그 긴 시간을 버틸 생각을 하니 두려웠지만 그냥 해보기로 했다. 죽을 각오를 가지고.

선방에 새해 아침 햇살이 강렬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먼지 하나 없을 것 같은 선방에 자욱한 먼지가 햇빛에 여실히 드러난다. 초보 수행자들은 빈번히 몸을 틀고 움직인다. 먼지가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모두가 참선에 들어가면 이내 곧 사라질 줄 알았는데 먼지는 계속해서 내 주위를 맴돈다. 빛을 피한 먼지는 자취를 감추고 난 또 그 속도 모르고 깜박 속아버린다.

그 먼지 속에 내가 있고 내 마음 속에 있는 먼지, 그것이 문제였다. 빛을 비춰주면 그 먼지가 있는지 없는지, 얼마나 있는지 알겠지. 마음 속 먼지를 일으키는 저들의 움직임이 날 그토록 힘들게 했구나. 욕심부리지 말고 스님 말씀대로 한번 해보자. 그냥 밀고 나가는 거다.

#전시용이 아닌 나를 위한 것

“정신없이 하라. 무수한 상처를 돌보지 말고 죽지않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싸워라. 화두가 들리고 안 들리고 상관없이 들라.”

수불 스님은 4일째가 되자 채찍질을 가하셨다.

스스로 90분 좌선, 5분 휴식이라는 계획을 세우고 철저히 지켜나갔다. 그때 불현듯 ‘번뇌와 망상으로 둘러싸인 나, 그것들이 나를 지탱하는 우스운 힘이었구나. 알음알이로 인해 많은 것을 놓치고 살았구나. 난 그냥 살면 될 뿐. 번뇌 망상에 싸인 나와 아닌 나는 종이 한 장 차이구나. 현실은 현실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의 것도 아니고 과거도 미래도 아닌 것. 그게 진정한 나도 아니었고 그 무엇도 아니었다.’ 이런 느낌이 몰려오는 날 저녁 스님은 느닷없이 화두 공부를 하고 있는 수행자들을 찾아왔다. 드디어 문답의 시간이 온 것이다.

사람들의 질문은 끝이 없었다. 자신의 심적 신체적변화를 스님께 토로했지만 스님은 “그때 화두를 들고 있었느냐. 화두만 놓지 않으면 된다”라는 답으로 일관하셨다. 뭔가를 깨달았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닐까? 내가 깨달은 것이 아니라 또 알음알이로 깨달았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냥 좀 더 해보자. 깨달아야 한다는 의무감이나 책임감을 갖지 말자.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니까.

#오로지 몰입

“불교 공부를 통해서 누구나 업과 망상으로 싸여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그러나 업장 소멸은 누가 해 주는 것이 아니다. 수행을 통해서 해야 하는 것이다.” 수불 스님의 말씀에 그동안 반쪽짜리 불자로 지냈던 내 자신을 보게 되자 안타까웠다. 아는 것이 깨달은 것이라고 착각을 하며 살았던 내 과거가 한심스러웠다. 철야를 다짐했다. 좌선의 시간을 2시간으로 늘렸다.

오로지 몰입이었다. 나를 둘러싼 아주 딱딱해서 깨지지 않을 것 같은 작은 한 조각이 뜯겨 나가는 것 같았다. 보이지 않는 빛이 보였다. 한 조각이 뜯겨 나가자 다 뜯어내야겠다는 강한 의지가 생겼다. 절대 쉽게 벗겨지지 않는 나의 허물들. 힘겨웠지만 그냥 밀고 나갔다.

간화선을 통한 참선과 깨달음 그것은 영화에서나 보여주는 신비체험이나 빛으로 장엄한 그 무엇이 아니었다. 있는 그대로 그 자체였다. 동전의 앞과 뒤가 아닌 동전 그 자체, 너와 나의 구분이 아닌 너도 없고 나도 없음을. 있는 그대로 여여(如如)할 뿐.

새벽이 되자 다리를 틀고 화두를 참구하는 것 자체에서 평안을 찾았다. 그저 그렇게 나를 계속 바라만 봤다.

#스님과의 문답

확인을 하고 싶었다. “보살은 어떤 변화를 느꼈는가” 스님이 물으셨다.

“알음알이를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순간 더욱 화두를 들었습니다. 깨달음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것도 아닌 것 같았습니다. 동전의 앞과 뒤도 아니고 동전 그 자체입니다.”

그리고 지난 6일간 스님께서 해주신 법문들을 반추하며 삶에 대한 도피와 회피, 인생은 고(苦)라는 것에 대한 강한 회의감, 과거에 대한 후회, 미래에 대한 불안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기 시작했다. 그것들을 피할 필요도 그렇다고 없애고 말고 할 필요도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거다. 그 속에서 끊임없이 넘쳐흐를 번뇌와 망상을 가라앉히고 지혜로운 안목으로 세상을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다.

어떠한 위기가 닥쳐오면 사람들은 늘 ‘나’부터 생각한다. 그 출발점이 어디든 ‘나’에서 멈춘다. 꾸준한 수행을 통해 이제 ‘나’라는 부딪침이 올 때 마음의 일어남을 얼마나 잘 제어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깨달음의 길은 현실을 회피하는 것이 아닌 현실과 철저한 부딪침으로 그 부딪침에서 진정한 나를 찾는 것, 현상의 본질을 직시하는 것이다. 죽기 전에 죽으면 죽어도 죽지 않는다. 나를 철저히 버리는 수행과 회향의 삶을 모든 이에게 권하고 싶다.

이상언 기자 bsibb31@naver.com
[현대불교신문 / 715호 2009년 1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