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답습은 퇴보…새로운 전통 창출해야

건축전문가가 제안하는 현대사찰

전통사찰 건축양식이 시대가 바뀌면서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가 11월 1일 부산 안국선원에서 개최한 국제학술대회에 참여한 관련 전문가들은 더욱 다양하고 복잡한 기능을 충족시키고 전통 의례와 교리를 동시에 수용해야 하는 현대 사원의 특징에 따라 과거 어느 때보다도 새로운 건축의 양식과 디자인이 필요하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도시화에 따른 경제ㆍ환경적 조건으로 인해 사찰의 대지가 급격히 제한되고 있다는 것도 새로운 건축 양식이 필요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날 학술대회에서 최근 전통과 현대적 감각을 적절히 혼합한 사원 설계로 많은 주목을 받은 국민대학교 김개천 교수는 ‘현대 한국 불교 사원의 건축과 방향’이라는 논문을 통해 “최근 건립된 몇몇 사원들에서 살펴보면 현대 도심의 사원건축은 크게 3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며 “첫째 전통 형식을 차용하거나 둘째 전통과 현대의 혼합 셋째 현대적 형식의 사원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직접 설계한 건축물들을 예로 들며 각각의 유형이 지닌 특징들을 설명해 큰 관심을 모았다.

>김 교수에 따르면 서울 양천구 신정동에 지어지고 있는 국제템플스테이센터는 전통 형식을 차용한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협소한 부지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고층 건축을 택했다. 전통 사원 건축 양식의 기와를 차용한 고층 건축물이며 전통양식의 법당과 9층탑, 크고 작은 여러 블록의 한옥 기와지붕이 한 건물을 이루는 방식으로 설계됐다. 기존에는 없는 형식이지만 전통양식처럼 느껴지는 것이 특징이며 내부에도 층마다 회랑을 배치해 전통건축의 공간양식처럼 느껴질 수 있도록 했다.

동국대 90주년 기념관 내에 만들어진 대각전은 전통과 현대적 감각이 혼합된 건축물이다. 대각전은 현대적 도심 법당과 학생들에게 불교를 가르치기 위한 강의실의 기능을 모두 수용할 수 있도록 해보자는 고민에 대한 대안적 결과물이다. 때문에 기념관 강당과 출입구를 공유하도록 돼 있지만 건물 입구를 일주문처럼 만들고 법당의 문을 사천왕문으로 형상화시켜 산 속의 전통사찰처럼 대웅전에 이르도록 했다. 또 기존의 원형 돔 형태의 거물모양을 살려 56종류의 불상을 배치해 작은 부처가 모여 하나의 본존불을 이루는 상징적인 설계를 시도했다.

강원도 인제의 만해마을과 전남 담양의 정토사는 네모반듯한 단순한 외양을 가진 현대적 형식의 사원이다. 그러나 법당 자체가 주변의 자연환경과 어울릴 수 있도록 하는 독특한 양식을 지녔다. 일반 사찰과는 달리 후불탱화를 따로 두지 않고 불상 뒤편의 창 너머로 보이는 소나무 숲이 후불탱화의 역할을 하도록 했다. 특히 담양 정토사는 산과 연못 옆에 건물을 배치해 마치 물 위에 떠있는 듯한 구성을 하고 있다. 전통적 양식의 창을 닫아 놓으면 창을 통해 비치는 산의 능선이 그대로 벽화처럼 펼쳐지도록 했다. 창을 열면 건물 외벽이 사라지면서 건물과 자연이 그래도 하나가 된 것처럼 느껴지도록 설계했다는 것이 김 교수의 설명이다.

김 교수는 “어느 특정한 형식이 이 시대의 올바른 사원건축의 방식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면서 “형태적으로 구분 짓기보다는 불교의 사상과 세계관을 충실히 담아내고 예불, 수행, 포교의 기능이 원활히 전개될 수 있도록 시대와 대중적 요구를 함께 수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하중 기자 raubone@beopbo.com
[법보신문 / 2008년 11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