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국선원 집중수행 프로그램 참여기

나는 지난 18년간 성천문화재단 고전아카데미를 운영하면서, 고전 강의만으로는 수강생들의 의식과 생활이 변하지 않는 것을 경험했다. 교양과 지식은 늘어나지만, 사람 자체는 별로 변화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실질적인 성숙을 위해서는 수행이 필요하다는 것을 실감하고, 스스로 참선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초보자가 어디서 어떻게 참선 수행을 시작해야 될지 막막해서 그동안 참선일기를 기록하고, 뒷사람들을 위해서 인터넷에 공개하고 있다.
그동안 여러 선방을 다니며 실참하고 또 적지 않은 법문을 들으며 공부해본 결과, 어느 정도 발심을 다지고 어지간히 정견도 세울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공부의 핵심은 화두가 들려져서 활구 의심을 체험하는 것인데, 이것만은 선지식을 만나서 직접 지도를 받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선지식을 만나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였다. 그러던 중 인연이 닿아서 안국선원 간화선 집중수행에 참여하게 되었다.

*기본교육

본격적인 수행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초심자용 기본교육을 받았다. 선원장 스님은 특히 사회윤리와 종교윤리의 차이점을 강조하였다. 전자는 일반적으로 선을 장려하고 악은 기피하거나 억압한다. 하지만 후자는 선과 악을 모두 포용하나, 물들지 않는다. 이 점을 이해해야 일반사회와 종교의 차이에 대한 혼동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선악을 넘어서는 종교윤리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안목을 얻기 위해서는 수행을 해야만 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마침내 사회윤리와 종교윤리라는 두 바퀴를 조화롭게 굴릴 수 있을 때, 우리는 바람직한 생활을 영위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수행의 목적에 대해 먼저 배웠다.

*화두제시

2008년 7월 말, 드디어 일주일간에 걸친 간화선 집중수행이 시작되었다. 스님은 매일 아침과 오후 두 번씩 법문을 해주었다. 첫날 첫 시간에 스님이 화두를 주셨다. 그런데 그것은 보통 알고 있는 방법이 아니었다.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킨 뒤 손을 들어 올려 손가락을 까닥하고 나서, “누가 이렇게 합니까? 이제부터 그 답을 찾으시오.” 그뿐이었다.
말하자면 우리가 알고 있는 ‘이뭣고’ 화두인데, ‘이뭣고’란 말을 쓰지 않고 그 요지를 바로 일러준 것이다. 그리고 이제 문제는 알았으니, 문제에는 신경 쓰지 말고 답만 찾아내라는 것이었다. 물론 그 자리에서 사람들이 ‘손가락’, ‘나’, ‘마음’ 등을 답으로 제시했지만, 따져보니 그게 모두 알음알이지 직접 체험해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분명히 모두가 손가락을 움직이는데, 누가 그러는지는 알 수 없었다. 정말 그 주체를 모르고 있다는 것이 판명난 것이다. 멀쩡히 하면서도 누가 그러는지 모르니, 의심이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후 스님은 삼일동안 질문을 받지 않고 오직 답만 찾아내라고 채근하였다. 그리고 이 일을 배고픈 자 밥 찾듯이, 목마른 자 물 찾듯이 간절하게 밀고나가라고 하였다. 햇빛 아래 렌즈로 초점 맞추듯이 집중하라고도 하였다. 수행자 중에는 초보자는 물론 타 종교인들도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호흡이건 자세건 일절 상관 말라고 하였다. 오직 답만 찾으라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옆 사람이 무슨 짓을 하건, 상관 말고 자기 일만 하라고 했다.
또한 눈을 뜨고 하되, 정 졸리면 누워 잠깐 눈 붙인 뒤 다시 일어나서 하라고 하였다. 만일 누웠는데 어떤 기운이 깨운다면, 일어나도 좋다고 하였다. 환자가 의사를 믿고 시킨 대로 하듯이 따라오라고 하였다. 하라는 대로만 하면 대승불교의 꽃인 선체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현대인은 아는 것이 병이니, 목 이상은 없다 치고 온몸으로 답을 찾아야 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의식으로 만들어서 의심하려 들지 말라고 강조했다. 또한 거리 두고 의심하지 말고 의심 자체가 되어보라고도 하였다. 꾸준하게 답만 찾아가면, 저절로 들려하지 않더라도 들려질 수밖에 없는 의심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처음엔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실감할 수 없었다. 나로서는 이렇게 되기까지 삼일이 걸렸다.

*첫3일
어쨌든 처음에는 누가 손가락을 움직이는지 답을 찾느라고 집중해보았으나, 그야말로 막막하기 그지없었다. 어찌 보면 빤한 것 같은데, 정말 깜깜하게 알 수 없었다. 답을 찾으면 찾을수록, 이상하게 점점 더 알 수 없었다. 전전긍긍 하다 보니, 자꾸 답답해져만 갔다. 뭔가 있기는 있는 것 같은데, 잡으려면 허공뿐이었다. 어느새 짙은 안개 속으로 자꾸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온 사방이 오리무중인데, 해마저도 져버린 것 같았다. 어둠 속을 더듬다보니 외롭고 무섭기까지 하였다. 일엽편주가 되어 파도치는 암흑 바다에 버려진 것 같은 느낌. 깊은 동굴 속에 홀로 갇혀있는 상황이랄까. 앞뒤 좌우 상하 모두 막막하고, 지푸라기 하나 잡을 데가 없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닌지, 주위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나름대로 집중하느라고 해서 그런지, 그 어둠 속의 방황이 너무 힘들었다. 너무나도 짙고 막막한 어둠속, 그 답답하고 갑갑함은 마치 지옥에 있는 것 같았다. 무간지옥이 따로 없었다. 그런 상태가 사흘째 계속 되니, 나는 많이 지쳤다.
다시 스님 법문 시간이 되었다. 말씀이 마치 채찍처럼 날아왔다. 지금 우리들이 겪고 있는 상황은, 비유하면 마치 무쇠 솥에 물을 가득 붓고 군불을 때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한 번 끓어 넘쳐야 되는데, 풀무질을 하다말다 하면 물 온도가 항상 뜨뜨미지근 해서 아무 일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 밀어붙이라는 주문이었다. 이날까지는 아무런 질문도 받지 않고 독려만 했다.

*4일째

나흘째가 되니, 비로소 질문이 있으면 하라고 했다. 가장 많이 나오는 질문은 화두가 제대로 들려있는지 감이 없어져서 불안하다는 것이었다. 스님이 대답했다. 화두는 마치 독에 갇힌 자라와 같다. 처음 잡아넣었으면 항상 갇혀있는 것이니, 더 이상 돌아보지 말라고 하였다. 자라 있나 확인 말고 답 찾는 데만 주력하라는 것이다. 보통 화두가 안 되는 주원인이 답은 찾지 않고 문제만을 외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아예 ‘이뭣고’나 ‘조주무자’ 화두를 제시하지 않고, 손가락을 사용하여 문제를 던지고 더 이상 돌아보지 않도록 하였다고 설명해준 것이다. 답만 찾을 때, 살아있는 활구가 된다는 것이다. 나는 이때 왜 내가 과거에 그렇게 화두를 들어도 활구로 이어지지 않았는지를 알게 되었다. 과거에는 참선 중 화두를 반복해서 외우기만 할뿐 정작 답은 찾지 않았다는 사실을 자각한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속으로 화두를 반복하면서 그저 문제만 외우고 있었으니, 원점에서 계속 맴돈 꼴이었다.
한편 다른 질문이 이어졌다. 화두를 들면, 머리나 신체의 어느 부분이 아프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스님은 화두의 힘을 믿고 아픔을 극복하라고 하였다. 비유하기를, 거문고 줄을 고르고만 있지 말고 있는 힘껏 잡아당겨 그만 끊어버리라고 하였다. 어떤 아픔을 호소해도, 매정하게 아예 아파 죽어보라고 하였다.
이 일은 구리뭉치를 두들겨 편 뒤 잘 갈아서 거울을 만드는 일과 같으니, 정성과 간절함을 바쳐 성심을 다하라고 하였다. 결과적으로 사람들이 어떤 질문을 하여도 답변은 한결 같았다. 어떤 현상이 일어나더라도 모두 무시하고 답 찾는 데만 집중하라는 것. 만일 화두를 들지 않고 밖에서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했으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터이니, 그렇게 방해받는 것 자체가 화두가 들려있고 공부가 익어가는 증거라고 했다. 그러니 화두를 믿고 계속 밀고만 나가라는 것이다.

*죽기 살기

나는 사흘이 지난 뒤에 비로소 초점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나중에 이때를 돌아보았을 적에 이렇게 이해되었다. 나는 아주 짙은 무명 속을 헤매고 있었다. 내 안에 그런 어둠이 있는지 미처 몰랐다. 즉 답을 찾는 나와 답의 사이에는 무명의 장막이 드리워져 있는 것이다. 답을 찾아가는 나로서는 무명의 한복판으로 들어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암흑 속에서 내가 고통스러웠던 것은 당연했다. 무명의 얼굴과 직면했을 때, 너무나 답답했기 때문이다. 그때 나에겐 오로지 여기서 살아나가야겠다는 의지밖에 없었던 것 같다. 돌아보니, 그때 모든 생각이 끊어졌던 것 같다. 살아나기 위한 궁리 하나뿐. 이것이 핵심이다. 이렇게 되면 화두가 들려지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 말조차 사치였다. 괴로우니까 한시가 급했다. 죽기 살기가 된 것이다.

그때부터 밥그릇을 앞에 놓고 떠먹기는 떠먹지만, 밥이 코로 가나 입으로 가나 몰랐다. 심지어 집중이 강할 때는 밥때를 그냥 넘기는 수도 있었다. 거짓말처럼 졸음도 싹 가셨다. 말 그대로 죽기 살기였다. ‘밤송이 하나가 목에 걸려있는 것만 같다.’는 옛말도 떠올랐다. 진짜 삼킬 수도 없었고, 뱉을 수도 없었다. 스님은 고양이가 쥐를 잡듯, 어미닭이 알을 품듯 정성껏 절절하게 해나가라고 일러주었다. 나는 알고 싶은 의지 하나만 부여잡고 답답함 속으로 잠겨 들어갔다. 그러다 한숨 돌리면, 그새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곤 했다. ‘일념이 만년 가듯 하라.’는 스님의 말씀이 이해되었다. 그동안 얼마나 체험하고 싶었던가! 나는 지금 아니면 언제 또 하랴 싶어 더욱 매달렸다.

그러나 터널의 끝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가도 가도 끝없는 망망대해에 그만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처럼 일어났다. 그럴 때마다 스님은 화두의심의 키만은 놓지 말라고 당부했다. 만일 옆에서 고비마다 일러주는 안내자가 없다면,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이 확실했다. 어둠은 너무나 길었고, 고독감과 공포심은 존재를 뒤흔들 정도로 강력했다.

*용문폭포를 넘어라

이때쯤 나로서는 가장 어려운 고비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동안 공부했던 것이 자꾸 떠오르며, ‘이게 바로 답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계속 일어났던 것이다. 그러나 조금 참고 기다리면, 정답이 아니라는 사실이 스스로 알아졌다. 하지만 어느새 또 다른 답이 떠올랐다 사라지곤 했다. 어느 때는 빛이 보이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이거야말로 확실한 답이라는 생각이 들어 스님에게 말씀드렸는데, 보기 좋게 퇴짜를 맞았다. 처음에는 굉장히 실망했는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역시 답이 아니라는 사실을 납득하게 되었다. 만일 이때도 안내자가 없었더라면, 나는 그것이 답이라고 생각하며 평생을 훈장처럼 지니고 다녔을 지도 몰랐다. 나는 이런 식심이야말로 공부를 방해하는 마구니의 짓이라는 말씀을 깊이 새기게 되었다. 스님은 ‘내 말마저 마구니 말이라고 생각하라.’고 하였다. 어쨌든 이런 방해조차 화두공부가 진행되고 있다는 증거라니까, 나는 그 말을 믿고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

나는 잠도 잘 안자고 끼니도 거르곤 해서 몹시 지쳐있었다. 스님은 비유하여 말하길, 이 일은 잉어가 황하를 거슬러 올라 마침내 용문폭포를 뛰어넘어 용이 되는 일과 같다고 했다. 나도 필사적으로 뛰어올라보지만, 자꾸 미끄러져 떨어지는 것만 같아 내심 절망이 밀려왔다. 그 허탈함에 어느새 눈이 젖어 있곤 했다. 아, 이것이 바로 지옥이로구나! 끝내 이무기로 살 팔자련가! 나는 포기하고 쓰러졌다.
그때 스님이 말했다. “이 공부는 되는 겁니다. 누구라도 되는 겁니다.” 이 말이 나를 다시 일으켰다. 마침 밥때가 되어, 나는 달려가서 밥을 먹었다.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우리 수행자들을 뒷바라지 하는 봉사자들의 환한 얼굴 모습이 고맙기 그지없었다. 나는 돌아와 앉았다. 저절로 신심과 의심에다 분심마저 솟구치기 시작했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나라.’는 옛말이 생각나, 나는 어디서 잘못되었는지를 자세히 되짚어 보았다.

*좋은 인연

어느 순간 초점이 딱 맞는 것 같은 감이 들었다. 모든 감각과 생각이 끊어지고 오로지 근본질문 하나만 남은 것 같았다. 나는 그 답답함 속으로 파고들었다. 무언가가 천근만근으로 나를 내리 누르는 것 같았다. 이미 화두도 없고 의식도 없고 오직 꽉 막힌 답답함 그 자체가 되어 한없이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꼼짝도 않고, 그냥 타들어갔다. 얼마나 흘렀는지 시간도 멈춘 것 같았다.
그러다가 몸이 편안해졌다. 몇몇 현상이 일어난 것 같지만, 생략하겠다. 단지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웠다. 몇 십 년 앓던 체증이 빠져나간 것만 같았다. 계속해서 몸 전체가 풀려나가는 느낌이 이어졌다. 그리고 안심이 되었다. 완전히 입장이 바뀌어 있었다. 이제 공연한 짓에 속을 염려는 없었다.
그 날 밤은 두 다리 쭉 뻗고 잘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스님을 만나 뵙고 경험한 일을 말씀드렸더니, 좋은 인연을 맺었다고만 말했다. 그리고 앞으로 매사에 살얼음을 디디듯이 조심하라고 하면서, 이제는 거문고 줄을 고르듯이 정진해나가라고 하였다. 화두는 들리면 들리는 대로, 안 들리면 안 들리는 대로 두라고 하였다.
일주일간의 간화선 집중수행을 마치니, 내 몸무게는 삼 킬로가 빠져있었다. 나는 다른 사람보다 유독 더 힘이 들었던 것 같다. 그만큼 업식이 더 두터웠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무명의 지옥고를 조금은 체험한 것 같다. 그리고 그곳에서 빠져나오려고 무진 애를 썼다. 화두는 의심이 되고, 의심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풀리지 않기에 답답함의 의단이 되었다. 그 꽉 막힌 상황에서 오로지 살아야겠다는 일념뿐이었다. 그런 몸부림 끝에 몸이 편안해지는 것을 경험했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생각으로 어쩌고 저쩌고가 아니라, 몸과 마음이 변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홍근: 성천문화재단 연구실장. 마드리드대 문학박사이며, 저서로는 <참선일기>, <禪畵>, <보르헤스 문학전기> 등이 있다.

*격월지 <BuddhaLink> 2008.11-12통합호 48p-53p에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