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오신 날 특집-현대인과 수행> ‘바쁜 일상’ 내려놓고 ‘나’를 찾아 떠난다

간화선(看話禪) 수행·산사체험 인기

‘선지식들아, 만약 수행하기를 바란다면 세속에서도 역시 가능한 것이며(在家亦得) 사찰에 있기만 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不由在寺).’

선불교의 사상적 연원인 육조 혜능(六祖 慧能) 스님이 출가자 아닌 사람도 수행이 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한 말이다. 수행이란 출세간과 세속이라는 장소와 신분의 문제가 아니라 수행의 실천 여부가 관건이라는 이야기다.

치열한 생존경쟁, 갈수록 빨라지는 속도, 정보의 홍수에서 허우적거리는 현대인들에게 천천히 내려놓고 비우라는 불교의 가르침이 두드러지기 때문인가.  재가불자와 일반인 사이에서 선방 스님들의 전유물처럼 인식되던 간화선 수행자가 늘고 있다.

간화선뿐 아니다. 매일 규칙적으로 절을 하면서 건강과 수행 효과를 동시에 챙기는 절 수행자를 비롯, 남방불교의 수행법인 위파사나 수행, 염불 수행, 간경(看經) 수행, 진언 수행 인구도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도심의 선방이 간화선을 하는 일반인들로 채워지는가 하면 사찰의 단기출가 프로그램이나 템플 스테이도 성황을 이루고 있다. 출가 스님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수행을 체험하며 삶의 극적인 전환을 이룩했다고 고백하는 이들도 속속 등장한다.

◆ 도시로 내려오는 간화선 = 조계종에 따르면 출가 스님이 아닌 재가 신자로 간화선 수행을 생활화한 이는 어림잡아 2만여명. 이는 매년 동안거, 하안거 때 선방에 들어가는 출가 수행자 2000~2500명의 10배에 가까운 수치다. 간화선 관련 프로그램이나 시민 선방도 수행을 하려는 일반인들로 붐빈다.

대표적인 것이 조계종 중앙신도회 부설 불교인재개발원에서 진행 중인 11주 과정의 간화선 프로그램. 간화선을 대중화하기 위해 종단 차원에서 실시한 이 프로그램은 매번 모집 정원(50명)을 채우며 현재 7기 수료생을 배출했다. 이 프로그램의 지도 강사로 활동 중인 조계종 총무원 박희승 기획차장에 따르면 참석자들의 면면은 교수나 변호사, 의사, 연구원, 공무원, 기업체 임직원, 사업가, 주부, 학생 등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특히 경남 거창이나 강원 원주, 충남 천안 등에 거주하면서 매주 빠짐없이 이 프로그램에 참석, 수행을 향한 열정을 불태우는 이들도 없지 않다.

참석자 수로 규모가 더 큰 것은 수불 스님이 지도하는 안국선원 참선 프로그램이다. 부산과 서울, 창원 등으로 나뉘어 선방 수좌들과 같은 시기에 결제와 해제를 하는 안국선원의 안거 참석자는 매 안거마다 2000명에 가깝다. 전 조계종 종정 혜암 스님이 주석했던 해인사 원당암을 비롯, 선지식 혜국 스님과 송담 스님이 각각 주석 중인 충주 석종사 금봉선원과 인천 용화사 시민선원도 일반인들이 많이 참석하는 선원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에서는 강남 봉은사 시민선방과 성북동 길상사 시민선방 등이 도심 속의 선방으로 유명하다

조계종이 펴낸 ‘간화선 입문’(조계종 출판사)에 따르면 일반인들이 참선을 하는 목적은 나의 진정한 모습을 보는 것. 어떤 유혹에도 흔들림이 없고, 한없이 평화롭고 자유로운 나를 바로 ‘이 자리에서 그대로 보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참선 체험자들이 전하는 효과는 각양각색이다. 불안과 공포가 사라졌다, 자신감이 생겼다,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는다, 내면이 진정 자유롭다, 마음의 안정과 집중력이 생긴다, 항상 현재를 산다…. 경북 봉화 금봉암에 주석 중인 선지식 고우 스님은 이를 “참선을 하는 것은 대립과 투쟁에서 벗어나 너와 내가 진정한 하나가 되는 것으로, 무한 경쟁에서 무한 상승의 길로 가는 것”이라고 요약하기도 했다.

◆ 산사를 찾아가는 도시인 = 조계종 템플 스테이 사무국에 따르면 2002년 시작 당시 1000명에 불과하던 템플 스테이 참석자 수는 2005년 5만명을 넘어섰으며 지난해에는 8만1652명을 기록했다. 삼보 사찰인 해인사, 통도사, 송광사를 비롯, 수덕사, 대흥사, 화엄사, 미황사, 월정사, 백담사 등 전국 대부분의 주요 사찰들이 다양한 내용의 템플 스테이를 운영한다. 참여 사찰이 다양한 만큼 템플 스테이의 프로그램도 참선형, 사찰 문화 체험형, 휴식형 등으로 사찰의 특성에 따라 특화해가는 추세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찰에서 새벽 도량석 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깨어나 새벽 예불, 숲길 행선, 참선, 발우공양, 다도체험, 스님과의 대화 등을 통해 사찰 생활을 체험하고 마음의 휴식을 취하는 것은 비슷하다.

템플 스테이보다 본격적인 체험 프로그램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 오대산 월정사와 충북 영동의 반야사, 재가 신자들의 불교운동 결사체인 정토회 등에서 진행하는 한 달~100일간의 단기출가 프로그램. 특히 지난 2004년 9월, 한 달 과정의 단기출가학교를 시작한 월정사의 경우 한국 불교사에서 처음으로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은 채 행자 생활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으로 진행,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원동’이란 법명을 받고 지난 2006년 9~10월 단기출가학교를 체험한 한 수료자는 행자 생활을 하는 한 달 동안이 환희와 참회의 연속이었다고 전한다. 삭발식, 전나무 숲길 삼보일배, 새벽 숲길 행선, 철야 3000배 정진 등 프로그램 하나하나가 자신을 돌아보게 하며 가슴을 울리는 것이었지만, 예기치 않게 감동을 주는 행사도 많았다는 것이다.

“프로그램 중에 ‘서로 부처님 되기’란 행사가 있었어요. 도반이 부처님이라 생각하고 서로 108배를 올리는 행사였지요. 행사가 진행되면서 누군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울었는지 모릅니다. 제가 도반에게 절을 받을 만한 삶을 살아왔는지, 자격이 있는지 참회의 눈물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단기출가학교를 마친 뒤 아예 출가 수행자가 되는 등 삶을 바꾼 이들도 없지 않다. 현재 16기 행자 100명이 프로그램을 진행 중인 단기출가학교의 수료생은 약 1500명. 입교 경쟁률은 3대1에 가깝다. 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은 “단기출가학교나 템플 스테이는 삶에 지친 도시인들에게 레포츠로는 불가능한 마음의 평온과 재충전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며 “이는 또한 출가자 중심으로 운영되는 불교가 재가자도 제 역할을 하는 불교로 바뀜과 동시에, 역사와 사회에 바르게 눈을 뜨고 세상과 호흡하는 21세기형 새로운 불교 운동의 단초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락 기자
[문화일보 / 2008년 5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