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명상] 절이 바뀌어야 불교가 산다 /무관 스님

부산 금정구 남산동 남산중학교 옆에는 아주 특이하고 색다른 사찰이 있다. 난 아침마다 범어사 금정불교대학 사무실로 가면서 도로변 좌측에 있는 안국선원(安國禪院)을 보면서 오고 간다. 겉모양으로 봐서 저 건물이 미술관 또는 박물관인지 어떤 용도의 건물인지 분별할 수가 없다. 안국선원은 4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4층이 법당이다. 법당은 전국의 어느 사찰의 법당보다도 웅장하고 위엄이 넘쳤다. 그런데, 이 웅장하고 기도를 하면 기도가 잘 될 것 같은 법당에서 염불(念佛)이나 기도는 범어사나 다른 사찰에서 행하는 것의 십분의 일도 하지 않고 평소에는 죽비로 예불을 하고, 선원장(禪院長) 스님이 계시면 약 1시간 정도의 선어록(禪語錄) 법문을 한다.

또 특이한 것은 평소에도 신도들이 와서 스님이 있든 없든 열심히 선원에서 수행정진 한다는 것이다. 일반 절에서는 기도 기간이 끝나면 신도들의 발길이 거의 없는 반면, 안국선원은 일년 내내 수행 정진하는 신도들이 줄을 잇고 있다. 기도 염불은 다른 사찰에 비해 거의 안하지만 신심과 원력은 더욱 깊고, 그리고 다른 절의 신도들 보다 보시(布施)도 많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안국선원의 신행(信行)과 불교적 신앙관은 아주 고급화되어 있고, 불교의 궁극적인 목적인 돈오견성(頓悟見性)을 향하고 있었다.

스님들이 모이면 여담(餘談)으로 정치인들의 종교성향을 이야기 하곤 한다. 한국에 불자(佛子)가 1500만이라고 하는데 정치인들, 특히 얼마 전 끝난 대선 출마자 중에서는 불자가 없었다. 왜 일까? '한국에서 17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불교가 우리 민족과 함께 해온 불교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라고 생각하는 스님들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한국 스님들과 절에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절에서 행하고 있는 일련의 신행을 보자. 아침 3시에 도량석과 함께 새벽기도를 한다. 그리고 점심 때는 사시(巳時)기도를 하고 저녁 6시엔 저녁기도를 한다. 그리고 요즈음은 정월달이라서 정초기도를 비롯해서 입춘기도, 삼재(三災)기도를 하고, 매달 음력으로 초하루, 보름, 지장재일, 관음재일에도 기도를 한다. 백중이면 백중기도 또는 지장백일기도 대학입시 때가 되면 입시 100일기도 등. 이밖에도 온갖 기도라는 기도를 다하고 있다. 또 신도들도 염불 잘하고 기도 오래 하는 스님들을 존경하는 경향이 있다.

불교에서 기도도 하나의 신행, 수행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너무 신도들의 욕구에 영합하는 기도는 도리어 신도들을 참 불교에 대해 무지(無知)하게 만들 수 있다. 참된 불교의 종교관, 신앙관이 있다면 그것은 '각(覺·깨달음)'의 종교관, 신앙관이어야 하고 다른 종교들처럼 기도를 너무 중요시하다보면 '각(覺)'의 종교관이 쇠퇴해 질 수 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절에 살면서 '왜 새벽 3시에 일어나야 하는가?' 또 '왜 음력으로 기도나 법회를 하는가?' '아침예불을 6~7시에 하면 많은 사람이 동참할 텐데…' 등의 생각을 했었다. 절이 바뀌어야 불교가 살 수 있고, 불교의 종교성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21세기다. 농경사회 신행의 형태를 버리고 현대인에게 접근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아야 한다. 기도보다는 깨달음(돈오견성)으로 방향을 전환할 시기가 아닐까.

범어사 포교국장
[국제신문 / 2008년 2월 16일]